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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지매(2012-02-03 15:48:12, Hit : 1845, Vote :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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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기쉬운 순수이성비판

1781년은 서양 지성사에 큰 획이 그어진 해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처음 출간된 해라는 점에서 그렇다. 도대체 왜 [순수이성비판]이 그토록 중요한 저서로 평가되는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그 무렵의 서양의 지성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될 때는,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년)]를 발표하여 그의 역학이 세상에 소개된 지 100년 가까이 지났을 때이다. 뉴턴의 역학은 단순히 새로운 근대 학문으로서 물리학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뉴턴 역학의 등장은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이나 현상은 과학적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확고하게 한 계기가 되었고,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와 기대로 가득 찬 계몽주의 시대를 열어 제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전까지 학문의 여왕이라고 일컬어지던 사변적인 형이상학은 자연과학의 등장으로 더 이상 그런 영예로운 호칭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형이상학의 독단적인 논변은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에 근거한 철학을 제시한다. 철학의 숲에서 언급된 데카르트, 로크, 흄을 비롯하여, 볼테르, 디드로 등이 대표적인 계몽시대의 계몽 철학자이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계몽주의 정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하고, 이성에 의한 역사의 진보라는 계몽주의적 믿음에 대한 회의가 시작된다. 낭만주의가 그 싹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가 강조한 이성에 대한 신뢰를 거부하며 계몽주의에 도전장을 던진다. 이렇게 지성사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간된 책이 바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다. 칸트는 계몽주의가 도전받기 시작한 무렵에 살면서도 자신의 시대가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단순히 ‘계몽의 시대’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계몽이 계속되어야 하고, 계몽의 정신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칸트에 따르면, 계몽이란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미성년이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결국 칸트는 낭만주의 도전에 맞서 계몽주의를 옹호하고, 인류가 자율적으로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계몽된 시대를 그리면서 계몽이 지속되어야 함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의 자율적 사용, 이를 위해서 칸트가 제안한 것이 바로 ‘이성 비판’이다. 칸트는 계몽의 모토가 “과감하게 알려고 하라!” “따져 보라!”라고 말한다. 이성 비판이란 바로 과감하게 알기 위해서 열심히 따져보는 것이다. 이성이란 인간의 지적 능력을 통칭하는 것인데, 그러한 능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고 평가해 보라는 것이다. 요컨대 이성에 대한 이론이나 교설(doctrine)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한계를 긋고 명료하게 하는 작업이 바로 이성 비판인 것이다.

데카르트와 뉴턴 이후,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모든 물리적 대상과 자연 현상은 더 이상 전통적인 철학의 탐구 대상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계몽철학자들에게 남겨진 철학의 탐구 대상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율성을 지닌다고 여겨지는 인간의 정신뿐이었다. 칸트는 바로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세 가지 질문을 함으로써 계몽주의 철학의 완성을 기획한 것이다. 칸트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이고,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질문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이다. 첫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쓴 책이 [순수이성 비판]이고, 두 번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쓴 책이 [실천이성 비판],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답하고 있는 책이 [판단력 비판]이다. 이것이 바로 칸트의 유명한 3대 비판서이다.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을 학문적 인식이 가져야 할 논리적 구조를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with experience)’ 시작된다.  경험 없이는 어떤 인식도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칸트는 경험론에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칸트는 모든 인식이 ‘경험으로부터(from experience)’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경험만 가지고는 얻어지지 않는 선천적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선천적 인식’이란 시간적으로 경험보다 앞선 인식이라는 뜻이라기보다는 경험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즉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닌 인식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경험은 구체적이고 제한적이어서 우리는 경험 자체만으로는 결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합리론자에게도 한 표를 주고 있는 셈이다.


계몽의 꽃을 피운 철학자 칸트. <출처: wikipedia>

  
모든 학문적 인식은 판단의 형식을 취한다. 칸트는 모든 판단을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구분한다. 분석판단이란 주어 개념이 술어개념을 포함하는 판단이다. 예컨대 “모든 물체는 공간을 차지한다”는 칸트가 제시한 분석판단의 예인데, 그 이유는 ‘물체(body)’라는 개념은 ‘공간을 차지함(extended)’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어서 주어 개념(물체)을 분석하면 술어 개념(공간을 차지함)이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분석판단의 참과 거짓을 판별하기 위해서 언어에 대한 이해 이외의 경험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물체’라는 개념과 ‘공간을 차지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 판단이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석판단은 필연적이며 보편적인 판단이고 따라서 선천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분석판단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분석판단의 또 다른 예인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를 생각해보자. 이 판단은 모든 총각에 대해서, 그리고 항상 참이다. 따라서 이 판단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다. 그러나 이 판단이 참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우리 마을에 사는 A라는 사람이 총각인지, 남자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분석판단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더해주지는 못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표지. <출처: wikipedia>

반면에 종합판단은 주어 개념 안에 술어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판단이다. 그래서 술어 개념이 주어 개념에 부가적인 정보를 덧붙여 주는 판단이 종합판단이다. 그러므로 종합판단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켜주는 판단이다. 칸트는 종합판단의 예로 “모든 물체는 무게를 가진다.”를 든다. ‘물체’ 개념은 ‘무게를 가짐’이라는 개념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판단의 참과 거짓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확인이 필요하다. 이렇게 경험적 확인 요구되는 판단은 모두 종합판단이다.

그런데 문제는 학문적 인식이란 필연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켜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학문적 지식은 선천적이면서 종합적인 판단이어야 한다. 그래서 칸트는 묻는다. “선천적인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

일반적으로 모든 분석판단은 선천적이고, 선천적인 판단은 분석판단이라고 여겨지고, 또한 종합판단은 모두 경험적이어서 선천적일 수 없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선천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것이 바로 [순수이성 비판]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칸트의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이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음미해보자.
  

칸트에게 선천적인 종합판단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이 학문적 지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학문적 지식을 가질 수 있는 한, 선천적 종합판단은 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선천적 종합판단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는 곧 인간의 학문적 지식의 한계에 해당하고, 학문적 지식을 구축해내는 인간 이성의 한계에 해당한다. 사실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서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선천적 종합판단으로 구성될 수 있는가, 즉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학문으로서 가능한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칸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문제인, 신의 존재 문제, 영혼의 불멸성 문제, 인간의 자율성 문제 등은 순수이성의 한계 밖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형이상학의 모든 비밀을 풀어낼 열쇠’라고 말했다. [순수이성비판]의 또 다른 목적은 독단적인 형이상학을 극복하고 참다운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이성 비판이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올바르고 정당하게 사용되는 이성과 근거 없이 월권을 행사하는 이성을 구별할 수 있는 이성의 재판소, 그것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인 셈이다. 이로부터 칸트는 학문으로서 형이상학은 이제 신이나 영혼 등과 같은 대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성 자신, 이성의 규칙을 다루어야 하고, 그는 그러한 철학을 선험철학(transcendental philosophy)라고 칭한다.

다시 칸트의 핵심 질문으로 돌아가자. 도대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주면서도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는 선천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인식이 단순히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감각경험을 통해서 지각함으로써 생긴다면, 그러한 인식은 보편성이나 필연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또 우리의 인식이 경험이 개입하지 않은 채 생득적인 관념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줄 수 없을 것이다. 칸트의 사유의 혁명이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리의 인식은 경험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필연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식의 그런 특성은 경험이 아닌 무엇으로부터 얻어진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인식을 위한 ‘선천적 형식’이다.

유치하지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붕어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밀가루 반죽과 팥고물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붕어빵 틀이 필요하다. 밀가루 반죽과 같은 재료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인식의 재료라면 붕어빵 틀은 바로 선천적인 형식에 해당한다. 즉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인식의 재료를 얻고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형식인 선천적인 인식의 틀에 넣어서 인식을 구성해낸다. 요컨대 경험 대상이 그대로 우리의 인식내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능력이 대상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경험적 대상이 인식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능력이 경험적 세계를 구성하여 인식한다는 것, 이것은 대단히 혁명적인 사유의 전환이다. 칸트는 자신의 이러한 통찰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이 인식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능력이 대상을 구성한다는 주장은 천문학에서 천동설을 뒤집어엎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큼이나 혁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상이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지식의 저장고에 그대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서 선천적 형식이 대상을 구성한다는 칸트의 이러한 견해는 인식의 구성주의(constructionism)라고 불리기도 한다.
  

칸트의 구성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인식능력이 그 선천적 형식에 따라 대상을 구성하고 그렇게 구성되는 대상만을 인식한다. 따라서 인간 이성이 관심을 갖는 대상은 대상 자체, 사물 자체가 아니다. 이른바 물자체(thing-in-itself)는 우리의 인식 대상이 아니고, 우리의 인식능력과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여기지는 것이다. 이성의 선천적 형식에 의해서 구성되어 우리의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감각경험에 의해서 주어지는 현상(appearance)일 뿐이다. 이렇게 물자체가 아닌 현상으로 주어지는 대상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이성의 고유법칙과 그러한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이성의 능력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선험철학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험철학이란 대상들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 일반에 관한 우리의 선천적 개념을 다루는 학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칸트가 인식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서 이성이 따르는 고유법칙으로서 선천적 형식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에게 어떤 붕어빵 틀(선천적 형식)이 있기에 붕어빵(학문적 인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칸트는 인식을 하는 데 감성과 오성이라는 두 가지 인식능력이 작동한다고 말한다. 감성은 직관능력, 오성은 사유능력이다. 쉽게 말하면 감성은 감각경험을 통해서 인식의 재료를 받아들이는 능력이고, 오성은 주어진 인식 재료 사이의 관계나 양상에 대해서 사고하는 능력, 즉 개념화 해내는 능력이다. 그래서 칸트는 “감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오성이 없으면 어떤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라는 유명한 말을 한다. 이렇게 인식은 감성과 오성이라는 두 인식능력의 결합에 의해서 가능한데, 학문적 인식으로서 선천적 종합판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각 인식능력에 선천적 형식이 있어야만 한다.

칸트는 감성의 선천적 형식으로 시간과 공간이 있고, 오성의 선천적 형식으로 범주가 있다고 설명한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천적 감성 형식과 범주라는 선천적 오성 형식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붕어빵 틀인 셈이다. 그는 [순수이성 비판]의 앞부분, ‘선험적 감성론’에서 모든 감각경험으로부터 수용되는 대상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천적 형식을 통해서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대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선험적 논리학’에서 오성의 선천적 형식이 범주가 어떻게 선천적 종합판단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칸트가 시간과 공간이 감성의 선천적 형식이고, 범주는 오성의 선천적 형식이라고 단순히 선언한 것이 아니라 증명(해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칸트가 시간과 공간은 감성의 선천적 형식이고, 범주는 오성의 형식이라고 주장하기만 한다면 그 역시 그가 극복하고자 했던 독단적인 사변철학자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범주가 인식을 위한 선천적 형식이라는 것을 매우 엄밀하게 해명해 나가고, 이를 ‘형이상학적 해명’이라고 부른다. 칸트에게 있어서 이것이 바로 형이상학의 올바른 모습이고, 이것이 바로 형이상학의 과제인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칸트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선천적인 감성 형식을 통해서 각각 기하학적 판단과 수학적 판단이라는 선천적 종합판단을 갖게 되고, 오성의 선천적 형식인 범주를 통해서 자연과학적인 판단이라는 선천적 종합판단을 갖게 된다는 것을 논증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천적 형식을 사용하여 가질 수 있는 선천적 종합판단의 한계는 수학과 자연과학이다. 따라서 경험을 초월하거나 초감각적 실재를 기술하는 어떤 형이상학도 선천적 종합판단으로 구성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문제는 순수의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인식하기 위해 작동하는 인식능력 중 하나인 오성은 주어진 인식재료 사이의 관계나 양상에 대해 사고하는 능력이다. <출처: NGD>


<용어정리>

물자체
칸트의 용어로 Ding-an-sich. 인간의 사고는 사물이 감각에 주어졌을 때 비로소 작동을 시작한다. 그렇다고 감성에 주어진 인식 내용은 아직 형식을 갖추지 않은 것, 즉 밀가루 반죽일 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감성에 주어지는 것은 이미 시간과 공간이라는 빵틀에 의해서 찍혀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이미 선천적 형식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고, 감성의 선천적 형식을 거치지 않은, 감성을 촉발하게 하는 사물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러한 감성을 촉발하게 하는 사물 자체를 칸트는 물자체라고 부른다.

범주
칸트가 말하는 오성의 선천적 형식으로 범주는 12가지가 있다. 칸트는 자신이 제시하는 12범주가 주먹구구식으로 생각나는 대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성은 판단과 관련되고, 판단은 분량, 성질, 관계, 양상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각각에 3가지 종류가 있다. 그래서 모두 12가지의 판단이 가능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분량에 따른 판단의 종류: 전칭, 특칭, 단칭판단
성질에 따른 판단의 종류: 긍정, 부정, 무한판단
관계에 따른 판단의 종류: 정언, 가언, 선언판단
양상에 따른 판단의 종류: 개연, 실연, 필연판단

칸트는 이러한 12개의 판단을 토대로 오성의 선천적 형식으로 12범주를 제시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판단의 논리적 기능을 검토하여 오성의 작용을 목록화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칸트의 12범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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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하석 / 아주대 철학 교수
불어불문학을 공부하다 철학에 관심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학교에서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진리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언어철학, 심리철학, 논리학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하였고, 우리 사회가 논리적인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리더를 위한 논리훈련]을 출간하였다. 지금은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에서 철학과 논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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