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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지매(2003-06-20 12:24:16, Hit : 1967, Vote : 194
 ◀ 離相寂滅分 第十四 ▶

◀   離相寂滅分   第十四   ▶  



爾時 須菩提 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希有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 世尊 若復有人 得聞是經 信心淸淨 卽生實相

當知是人 成就第一希有功德 世尊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 如來說名實相 世尊

我今得聞如是經典 信解受持 不足爲難 若當來世 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 卽爲第一希有 何以故 此人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所以者何 我相 卽是非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是非相 何以故 離一切諸相 卽名諸佛

佛告須菩提 如是如是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希有

何以故 須菩提 如來說第一波羅蜜 卽非第一波羅蜜 是名第一波羅蜜 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說非忍辱波羅蜜 是名忍辱波羅蜜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我於爾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應生嗔恨 須菩提 又念過去於五百世 作忍辱仙人

於爾所世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是故 須菩提 菩薩 應離一切相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若心有住 卽爲非住 是故 佛說菩薩 心不應住色布施 須菩提 菩薩 爲利益一切衆生

應如是布施 如來說一切諸相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 須菩提 如來

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思語者 不異語者 須菩提 如來所得法 此法 無實無虛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 入闇 卽無所見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 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須菩提 當來之世 若有善男子善女人 能於此經

受持讀誦 卽爲如來 以佛智慧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 無量無邊功德



이시 수보리 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 이백불언 희유세존 불설여시심심경전
아종석래소득혜안 미증득문여시지경 세존 약부유인 득문시경 신심청정 즉생실상
당지시인 성취제일 희유공덕 세존 시실상자 즉시비상 시고 여래설명실상 세존
아금득문여시경전 신해수지 부족위난 약당내세 후오백세 기유중생 득문시경
신해수지 시인 즉위제일희유 하이고 차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소이자하 아상 즉시비상 인상중생상수자상 즉시비상 하이고 이일체제상 즉명제불
불고수보리 여시여시 약부유인 득문시경 불경불포불외 당지시인 심위희유
하이고 수보리 여래설제일바라밀 즉비제일바라밀 시명제일바라밀 수보리
인욕바라밀 여래설비인욕바라밀 시명인욕바라밀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왕
할절신체 아어이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하이고 아어왕석절절지해시
약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응생진한 수보리 우념과거어오백세 작인욕선인
어이소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시고 수보리 보살 응리일체상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생무소주심
약심유주 즉위비주 시고 불설보살 심불응주색보시 수보리 보살 위이익일체중생
응여시보시 여래설일체제상 즉시비상 우설일체중생 즉비중생 수보리 여래
시진어자 실어자 여어자 불광어자 불이어자 수보리 여래소득법 차법 무실무허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이행보시 여인 입암 즉무소견 약보살 심부주법 이행보시
여인 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 수보리 당래지세 약유선남자선녀인 능어차경
수지독송 즉위여래 이불지혜 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 무량무변공덕


금강반야바라밀경강화(金剛般若波羅蜜經講話)



離相寂滅分   第十四


그 때에 수보리가 이 경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뜻을 잘 알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사뢰었다.『희유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렇게

뜻이 깊은 경전을 말씀하신 것은 제가 이제까지 지혜의 눈(慧眼)을 뜬 이후로

아직까지 일찌기 듣지 못하던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음이 깨끗해지면 실상(實相)을 깨달음을

마땅히 알리니,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근본 실상은 곧 상(相)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설하시기를 실상(實相)이라 말씀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경을 듣고 그대로 믿어 받아 지니기는 어렵지 않으나

만일 다음 세상 마지막 오백세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 그대로 믿어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제일 희유한 사람이라 하리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사람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전혀 없기 때문이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아상이 곧

상(相)이 아니며, 인상·중생상·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을 말하오면

온갖 상을 떠나 자유로우면 곧 부처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 않으며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참으로 희유한 사람인 줄을 알지니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수보리야,

여래가 말하는 제1바라밀(보시바라밀)은 곧 제일바라밀이 아니기에 이를 제일바라밀이라 부르는 것이다.』

『수보리야,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 하기에

이를 인욕바라밀이라 하노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수보리야, 내가 옛날에 가리왕에게 몸을 갈기갈기 찢길 적에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옛날에 몸을 찢길 적에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더라면 성을 내며 원망을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또 저 옛날 오백세 동안 인욕선인(忍辱仙人)이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때에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온갖 모양(相)을 여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지니,

빛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며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법진(法塵)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아야 하나니 마땅히 머무름없는 마음을 낼지니라. 만일 마음에 머무는데가 있으면

이것은 머무름이 아니니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보살은 마음을 색에 머무르고서

보시하지 말아야 한다.」 하였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들은 마땅히 온갖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보시하여야 하나니, 여래가 설한

온갖 모양이 곧 모양이 아니며 또한 온갖 중생이 곧 중생 아니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참된 말만 하는 이(者) 이며, 실다운 말만 하는 이 이며, 여실한 말만 하는 이 이며,

속이지 않는 말만 하는 이 이며, 다르지 않은 말만 하는 이 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법. 이 법은 진실도 아니요 거짓도 아니니라.』

『수보리야, 어떤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 보시하는 것은 마치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이 아무 것도 보지 않하는 것 같고, 어떤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눈 밝은 사람이 햇빛 아래서 여러가지 물건을 보는 것 같으니라.』

『수보리야, 오는 세상에 선남자나 선녀인들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아시고 이 사람을 다 보시나니

모두가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功德)을 이루느니라.』



DIAMOND SUTRA



Section XIV.   Perfect Peace Lies in Freedom from Characteristic Distinctions



            Upon the occasion of hearing this Discourse Subhuti had an interior realization of its

    meaning and was moved to tears. Where upon he addressed Buddha thus: It is a most

    precious thing, World-honoured One,that you should deliver this supremely profound

    Discours. Never have I heard such an exposition since of old my eye of  wisdom first

    opened. World-honoured One, if anyone listens to this Discourse in faith with a pure,

    lucid mind, he will there upon conceive an idea of Fundamental Reality. We should know

    that such an one establishes the most remarkable virtue. World-honoured One,

    such an idea of Fundamental Reality is not,in fact,a distinctive idea; therefore the

          Tathagata teaches: "Idea of Fundamental Reality" is merely a name.  World-honoured

    One, having listened to this Discourse, I receive and retain it with faith and

    understanding. This is not difficult for me, but in ages to come-in the last five hundred years,

    if there be men coming to hear this Discourse who receive and

    retain it with faith and understanding,they will be persons of most remarkable achievement.

    Wherefore? Because they will be free from the idea of an ego-entity,free from the idea of

    a personality,free from the idea of a being,and free from the idea of a separated individuality.  

   And why?  Because the distinguishing of an ego-entity is erroneous.  Likewise the distinguishing

   of a personality,or a being,or a separated individuality is erroneous. Consequently those who

   have left behind every phenomenal distinction are called Buddhas all.

            Buddha said to Subhuti:  Just as you say!  If anyone listens to this Discourse and is neither

   filled with alarm nor dread,be it known that such an one is of remarkable achievement.  Wherefore?  

   Because, Subhuti, the Tathagata teaches that the First Perfection〔the Perfection of Charity〕is not,

   in fact, the First Perfection: such is merely a name.

            Subhuti,the Tathagata teaches likewise that the perfection of Patience is not the perfection of

   Patience: such is merely a name. Why so? It is shown thus, Subhuti: When the Rajah of Kalinga

   mutilated my body, I was at that time free from the idea of an ego-entity,a personality,

   a being,and a separated individuality. Wherefore?  Because then when my limbs were cut away

   piece by piece, had I been bound by the distinctions aforesaid, feelings of anger and hatred

   would have been aroused within me.  Subhuti, I remember that long ago, sometime during

   my last past five hundred mortal lives, I was an ascetic practising patience. Even then was

   I free from those distinctions of separated  selfhood. Therefore,Subhuti,Bodhisattvas should

   leave behind all phenomenal distinctions and awaken the thought of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by not allowing the mind to depend upon notions evoked

   by the sensible world-by not allowing the mind to depend upon notions evoked by sounds,

   odours, flavours, touch-contacts or any qualities.  The mind should be kept independent of

   any thoughts which arise within it. If the mind depends upon anything it has no sure haven. This is

   why Buddha teaches that the mind of a Bodhisattva should not accept the appearances of things

   as a basis when exercising charity.  Subhuti, as Bodhisattvas practise charity for the welfare of all

   living beings they should do it in this manner.  Just as the Tathagata declares that characteristics

   are not characteristics,so He declares that all living beings are not, in  fact, living beings.

         Subhuti,the Tathagata is He who declares that which is true; He who declares that which is

   fundamental; He who declares that which is ultimate. He does not declare that which is deceitful,

   nor that which is monstrous.  Subhuti, that Truth to which the Tathagata has attained is neither real

   nor unreal.

          Subhuti,if a bodhisattva practises charity with mind attached to formal notions he is like unto

   a man groping sightless in the gloom; but a Bodhisattva who practises charity with mind detached

   from any formal notions is like unto a man with open eyes in the radiant glory of the morning,

   to whom all kinds of objects are clearly visible.

          Subhuti,if there be good men and good women in future ages, able to receive, read and recite

   this Discourse in its entirety,the Tathagata will clearly perceive and recognize them by means of  

  His Buddha-knowledge; and each one of them will bring immeasurable and incalculable merit    

  to fruition.



① 오안(五眼)이란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眼)·법안(法眼)·불안(佛眼)을 말한다.


① 혜안(慧眼) : 오안(五眼) 중의 하나. 우주 사물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말한다. 이들 중 혜안은 만유(萬有)의 현상은 모두 空한 것이며, 본래 생기지도 않고(不生) 없어지지도 않음(不滅)을 깨달아 모든 집착을 여의고 차별적인 현상세계를 보지 않는 지혜의 눈인데, 이것은 성문과 연각 등 이승(二乘)의 지혜만을 얻은 까닭에 중생을 제도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성문(聲聞)이란 부처님의 음성을 직접 듣거나 교법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연각(緣覺)이란 스승없이 주위의 사물을 보고 인연현상을 파악하여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사람으로서 전생에 많은 공부가 있었던 사람을 말한다. 육안은 우리들의 감각적인 눈으로서 차별적인 현상계의 것만 보는 눈이고, 천안은 아무리 먼 곳의 것이라도 막힘없이 보는 눈이며, 법안은 세속제의 법만을 두루 보는 눈이며, 불안은 모든 사물에 차별을 두지 않고 평등하게 보는 눈이다.


② 신심이 맑고 깨끗하다(信心淸淨) : 악행으로 인해 생긴 허물이나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깨끗함을 청정이라 한다. 믿음이 불순하면 진실한 믿음이라 할 수 없다. 진실한 믿음이란 맑고 깨끗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맑고 깨끗한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실상(實相)을 보게 된다. 이렇게 거짓이 없고 참되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청정에는 자성청정(自性淸淨)과 이구청정(離垢청정)의 두 가지가 있다.


③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 : 바라밀이라는 말은 원어 파라미타(P ramit )의 음역인데, 그 뜻을 도피안(到彼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도피안(到彼岸)이란 불교에서 이상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수행의 길을 통틀어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제일바라밀은 육바라밀(六波羅蜜) 중의 첫째인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일바라밀을 으뜸가는 바라밀 또는 최고완성이라고 풀이하는 이도 있다.


④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 원어 크산티파라미타(Ksantiparamit )의 음역.찬데바라밀이라고도 하고, 그냥 줄여서 인바라밀이라 하기도 한다. 인욕은 크산티(K nti)의 의역. 육바라밀 중의 셋째 바라밀로서 온갖 모욕과 번뇌를 참고 견디고 원한을 일으키지 않는 수행을 하여 열반의 피안에 도달하는 도의 하나이다.                   ☞ 인(忍)


⑤ 가리왕(歌利王) : 막스 뮐러본에는 Kalinga-raja, 티벳본에는 Ka-lin-gahi rgyal-po라고 되어 있지만, 코오탄본과 길기트본에도 Kali-raja라고 되어 있다. 카링가는 나라이름이라고 하지만 어느 사이에 카리와 혼동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집역본과 유지역본은 가리(歌利), 현장본은 갈리, 급다본은 악왕(惡王)이라 번역하고 진제본은 가능가(迦陵伽)라고 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182권에는, "일찌기 듣기를, 과거 현겁(賢劫) 중에 왕이 있었는데 갈리라고 이름한다. 어느 때에 인욕이라 불리는 선인이 삼림숲에서 고행을 성실히 닦고 있을 때, 갈리왕은 숲속에서 유희하고 제멋대로 즐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갈리왕은 피곤하여 잠이 들고, 궁안의 모든 여자들은 화과(花果)에 빠져 수풀속에서 놀다가 멀리서 선인이 몸을 단정히 하고 고요히 사색함을 보고, 그 곳으로 나아가 선인에게 예배하고 주위를 돌며 그 옆에 앉았다. 선인은 욕망의 과오에 대해 설하고···왕은 잠에서 깨어 궁녀들이 보이지 않으므로 살펴본즉, 모든 궁녀들이 선인의 주위에 둘러앉아 있음을 보고 크게 성내는 마음을 내어, 이것은 바로 어떤 대귀(大鬼)가 나의 궁녀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선인은 대답하기를, <나는 선인이다.>

또 묻기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답하기를, <인욕도(忍辱道)를 수행하고 있다.>

왕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내가 성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인욕을 수행한다고 말하는구나. 그렇다면 이제 시험을 해봐야겠다.> 그리하여 또 묻기를, <

그대는 비상비상처(非想非想處)를 얻었는가?>

답하기를, <성취하지 못했다.>

왕은 더욱 성이 나서 말하기를, <그대는 아직 속인이거늘 어찌 정(情)을 제멋대로 하여 나의 궁녀들과 즐기는가? 또 그대는 인욕을 닦는 사람이라고 말한즉 한 팔을 내놓아야만 한다. 능히 참겠는가, 못참겠는가?>

그 때 선인은 곧 한 팔을 내밀고, 왕은 칼을 치켜들어 내리치자 한 팔이 땅에 뚝 떨어졌다. 왕은 또 다시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선인은 답하기를, <나는 인욕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러자 왕은 또 다시 팔을 잘라버리고 앞에서와 같이 묻자, 선인은 또 앞에서와 같이 나는 인욕을 닦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양발을 자르고, 양귀를 자르고, 또 코를 자르기를 계속했다. 선인의 몸을 삼분의 이 가량 베어 땅에 떨어뜨려, 상처투성이를 만들고 나서야 왕의 마음은 가라앉았다. 선인은 말하기를, <왕은 지금 무엇 때문에 스스로 피염(疲厭)을 내는가? 예컨대 내 몸을 모두 절단하여 겨자씨 내지는 먼지와 같이 만든다 하더라도 나는 한 생각도 분노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말하는 바의 인욕에 결코 두 가지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또 나는 이러한 원을 말한다. '그대는 지금 나를 무참하게, 내 몸을 일곱 마디로 잘라내어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미래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때에, 대비심(大悲心)을 내어 그대가 청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최초로 그대에게 칠종도(七種道)를 수행하게 하여 칠수면(七隨眠)을 단멸하게 하겠다.'라고>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때의 인욕선인이 지금의 세존 석가모니이고, 갈리왕은 지금의 구수고진나(具壽稿陳那)임을({대정신수대장경 3, p.25 上 下)"라고 되어 있다. 한편 또 같은 문장으로 [현우경](賢愚經) 제2권({대정신수대장경} pp.359 360)이 있고, 그 외에 [출요경](出曜經) 제23권({대정신수대장경} 4, p.731 上 中)과 [육도집경] 제5권({대정신수대장경} 3, p.25 上 下)이 있다. 또한 {대지도론} 제14권({대정신수대장경} 25, p.166 下), 제26권({대정신수대장경} 5, p.252 上)을 참조. 왕의 이름을 Kali라 하지 않고 Kalabu라고 하는 Kasi-raja라는 단어는 자타카(Vol. 3, Kjantivadi-jataka, pp.39 43)에 있다. 같은 종류의 것으로 또 Mahavastu(Vol. 3, pp.357 361)가 있다. {대당서역기} 제3권 오장나국(烏丈那國)에서는, 막킬리(Mangkil)성의 동쪽 45리에 졸저파(卒楮波)가 있다. 매우 영서(靈瑞)하다. 이 곳은 부처님이 옛적에 인욕선인이었을 때, 여기에서 갈리왕 때문에 지체(肢體)를 할재(割載)당한 곳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⑥ 공덕(功德) : 원어 구나(Gu a)의 의역. 구나(求那), 구낭(懼囊)이라 음역하기도 한다. 좋은 일을 쌓은 공(功)과 불도를 수행한 덕(德)을 말한다. 복덕과 같은 뜻으로도 쓰이고, 福은 복리(福利), 즉 善을 수행하는 이를 도와서 복되게 하는 것이고 복의 덕이므로 복덕이라 한다. 功은 공능(功能)이라고 하여, 功을 베푸는 것이고 그 대가가 자기에게 돌아옴을 덕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는 惡이 다함을 功이라 하고 善이 가득함을 덕이라 하는데, 덕은 얻었다는 뜻이고 공을 닦은 뒤에 얻는 것이므로 공덕이라고 말하고 있다.


⑦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네개를 아인사상(我人四相) 또는 사상(四相)이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집착상을 경계하는 말이다. 아상은 '나'라는 相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인상(人相)도 아상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인데,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한다. 중생상(衆生相)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등 현실주의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을 규정하는 말. 수자상(壽者相)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간에 일정한 수명을 하늘에서 받아 그 수명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의 집착을 말한다.







◀ 持經功德分 第十五 ▶
◀ 如法受持分 第十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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