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철학게시판


  일지매(2003-09-04 12:39:30, Hit : 2220, Vote : 198
 고등학교 윤리교과서 전문


고등 학교
윤    리

서 울   대 학 교    사 범   대 학
1종도서 도덕·윤리 연구개발 위원회


교육부

머 리 말

우리가 살아가는 청소년기는, 사람의 일생 중에서 가장 활기 있고 생명력이 넘치며,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꿈에 부푼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고,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방황과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를 아는 것이다. 이 윤리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인간으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원리와 윤리적·이념적 시각, 가치 판단 능력과 태도 및 행동 기준을 제시해 주기 위해서 편찬된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이 교과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교재만이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올바른 삶의 길을 밝혀 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교과서의 5개 단원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Ⅰ. 인간과 윤리’에서는, 인간의 특성과 다양한 인간관, 인간의 삶 속에서 윤리의 필요성을 보여 주며, 삶의 목적으로서의 자아 실현과 인격 완성을 위한 노력의 방향을 알게 한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특징과 윤리적 과제 및 진로 선택 과정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항들도 다룬다.
‘Ⅱ. 사회와 윤리’에서는, 공업화, 대중화, 정보화와 같은 현대 사회의 특징과 윤리적 문제, 가정과 직장 윤리, 시민 윤리에서부터 문화·예술과 종교 생활에 필요한 윤리 등을 밝힌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시되는 생명 존중, 환경, 성, 과학과 윤리 문제에 대하여 알아본다.
‘Ⅲ. 국가와 윤리’에서는, 국가의 본질과 국가관, 국가 발전과 이념의 필요성, 공산주의 이념의 쇠퇴와 역사적 교훈을 보여 준다. 우리가 지향하는 이념인 민족주의,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형성과정과 그 실태를 다루며, 국제 관계의 본질과 변화, 국제 윤리와 국제화 시대에 한국인이 지향해야 할 행동 성향 등도 밝힌다.
‘Ⅳ. 윤리 사상의 흐름과 특징’에서는, 인류 역사와 더불어 발전해 온 동서양과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윤리 사상의 연원, 발전 과정과 현대적 의의까지도 밝힌다. 특히, 앞 단원에서 다룬 개인 윤리, 사회 윤리, 국가 윤리의 윤리 사상적 뿌리를 찾는 데 역점을 둔다.
‘Ⅴ.통일 과제와 전망’에서는, 통일의 의미와 당위성, 남북한의 통일관과 통일 정책, 통일 장애 요인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필수적인 전제 조건과 예상되는 통일 과정, 통일 국가의 미래상과 그 역할 및 바람직한 한국인의 모습 등도 제시한다.
우리는 인제, 자신의 삶을 바람직하고 합리적으로 개척해 나가기 위하여, 윤리적 인식 체계와 이념적 시작을 정립해야 하겠다. Ⅰ, Ⅱ, Ⅲ 단원에서 바람직한 개인 윤리, 사회 윤리, 국가 윤리(이데올로기)를 파악하고, Ⅳ 단원에서 그러한 윤리와 이념적 사상적 근거를 탐색하며, Ⅴ 단원에서는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신념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끝으로, 이 교과서는 21세기와 조국 통일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한국인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윤리 의식과 바람직한 이념적 시각을 확립하게 하기 위하여 편찬되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차   례

Ⅰ.인간과 윤리

1. 인간의 삶과 윤리
(1) 인간의 특성
(2) 다양한 인간관
(3) 인간의 삶과 윤리의 필요성
2. 자아 실현과 인격 완성
(1) 삶의 의미와 목적
(2) 자아의 발견과 실현
(3) 인격 완성을 위한 노력
3. 인생에서의 청소년기
(1) 청소년기의 특징
(2) 청소년기의 윤리적 과제
(3) 청소년기의 진로 탐색

Ⅱ. 사회와 윤리

1. 현대 사회의 윤리적 상황
(1)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징
(2) 현대 사회의 윤리적 문제
2. 현대 사회의 생활 윤리
(1) 가정 생활 윤리
(2) 직장 생활 윤리
(3) 시민 생활 윤리
(4) 문화·예술 생활 윤리
(5) 종교 생활 윤리
3. 현대 사회의 문제와 윤리
(1) 생명 존중과 윤리
(2) 환경과 윤리
(3) 성(性)과 윤리
(4) 과학과 윤리

Ⅲ. 국가와 윤리

1. 국가 발전과 이념
(1) 국가의 본질
(2) 국가관의 여러 형태
(3) 국가 발전을 위한 이념적 기초
(4) 공산주의의 쇠퇴와 그 역사적 교훈
2. 민족주의,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
(1) 민족주의의 개념과 역사
(2) 세계화와 우리의 민족주의
(3)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형성 및 실태
(4)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인간화
3. 국제 관계와 윤리
(1) 국제 관계의 본질과 변화
(2) 국제 관계에서의 윤리성
(3)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의 우리의 자각

Ⅳ. 윤리 사상의 흐름과 특징

1. 동양의 윤리 사상
(1) 동양 윤리 사상의 연원
(2) 동양 윤리 사상의 전개
(3) 동양 윤리 사상의  현대적 의의
2. 서양의 윤리 사상
(1) 서양 윤리 사상의 연원
(2) 서양 윤리 사상의 전개
(3) 서양 윤리 사상의  현대적 의의
3. 한국의 윤리 사상
(1) 한국 윤리 사상의 연원
(2) 한국 윤리 사상의 전개
(3) 한국 윤리 사상의  현대적 의의

Ⅴ. 통일의 과제와 전망

1. 우리 나라의 통일 문제
(1) 통일의 의미와 당위성
(2) 남북한의 통일관과 통일 정책
(3) 남북한 통일의 장애 요인
2. 민족 통일의 조건
(1) 새로운 세계 질서와 통일 환경의 변화
(2) 통일 국가 실현의 전제 조건
(3) 예상되는 통일 과정과 우리의 자세
3. 통일 이후의 전망
(1) 통일 국가의 미래상
(2) 국제 사회에서의 통일 국가의 역할
(3) 미래 사회의 한국인상


Ⅰ. 인간과 윤리

1. 인간의 삶과 윤리
2. 자아 실현과 인격 완성
3. 인생에서의 청소년기

  이 단원의 공부를 위하여


  청소년기는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특히 고등 학생 수준에서는 사고 능력이 현저하게 발달하고, 신체적 성숙도 성인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는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식견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앞으로 성인이 되어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원에서는, 중학교 도덕과에서 배운 바른 생활 습관과 사회 규범을 좀더 익히고, 인간에 대하여 한층 더 깊게 생각해야겠다. 이를 위하여 동서양 및 한국의 윤리와 사상에서 본 인간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들을 살펴보고, 청소년기의 위치를 자각하여 올바른 삶의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자아 실현과 인격 완성의 의미를 체득하고, 그것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는 이 단원을 통하여, 청소년기의 윤리적 과제를 파악하여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윤리적 혼란을 극복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보다 훌륭한 삶을 위한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야 하겠다.


1. 인간의 삶과 윤리

   (1) 인간의 특성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만족할 만한 답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인간이 그만큼 복잡하고 신비로운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처음부터 인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신(神)이나 우주의 본질, 천체와 같은 것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으며, 지적 수준이 높아진 후에야 비로소 인간 자체에 대하여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특성에 대하여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문제는, 인간도 일종의 동물임이 분명하다고 할 때, 인간이 동물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지녔고, 또 얼마나 차이점을 지녔는가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과 동물을 비교함으로써 인간의 특성을 상대적으로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동서양의 대표적인 사상과 종교 속에 나타난 비교 결과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동양의 대표적인 윤리 사상 중의 하나인 유교에서는 인간이 육체적인 면에서는 동물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착한 성품을 갖추고 있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완전히 구별되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인간은, 대체적으로 그 본성이 선하지만, 육체적 욕구에 의하여 악해질 소지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선한 본성을 드러내고 악한 본성을 억제하기 위하여 수기(修己), 수양(修養)이 요구되는 것이다.
동양의 불교에서는,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동물로 본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란 육체와 감수 기능을 가지고 상상하고 행동하며, 그리고 의식을 지닌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의 삶은 그의 육체적 욕구로 인하여 고통에 싸여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은 불성(佛性)을 깨달음으로써 고통을 극복하고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도교에서는 인간과 만물을 구분하여 인간만이 어떤 특성을 가졌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오히려 인간과 만물이 서로 공유하고 있는 어떤 것을 인간의 본성이며 덕(德)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덕은 훌륭한 위인이나 어른보다 오히려 순진하고 욕심이 없는 어린아이에게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교는 인간의 의식적인 꾸밈이나 조작이 가해진 가체 체계를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르는 삶을 강조한다.
서양의 경우에는, 일찍이 인간을 일종의 동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왜냐 하면, 인간은 신체 구조상으로 유인원(類人猿)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처럼 식욕, 성욕, 수면욕을 가지고, 공격적인 본능과 같은 생물학적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동물과 다른 존재로 보기도 하였다. 고대 그리스 이래 서양에서는, 인간은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며,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왔다.
이러한 인간의 이성(理性)은, 그것이 지성(知性)이라고 불리든 지능(知能)이라고 불리든 간에, 우리로 하여금 직접적이고 1차적인 감각이나 감정의 차원을 벗어나게 해 준다고 보았다. 또, 이성은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창조적으로 다양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인간이 학문과 사상, 제도나 기술 등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동서양에서 생각하는 인간의 특성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적 특성과 이성적, 정신적 존재로서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과거의 철학자들 중에는 인간의 이러한 두 가지 성질을 서로 대립되고 상반되는 특성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의 동물적인 특성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특성을 살려야만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견해는 다소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이성적 측면과 함께 생리적, 기본적 욕구도 함께 중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는, 이처럼 동물과의 비교를 통한 관점 이외에도 독특한 면을 지적하는 견해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바로 ‘도구적(道具的) 존재’라는 점이다. 이는 인간만이 여러 가지 도구나 연장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간단하게는 괭이, 호미, 항아리 등에서부터 복잡하게는 기차, 기선, 라디오, 컴퓨터,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무수히 많은 도구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해내고 있다. 도구에는 여러 가지 사회 제도, 법률, 규정, 관습과 같은 무형의 것도 많이 있는데, 이러한 무형의 도구를 이용하여 인간은 사회 생활을 원활하게 영위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특성에 대한 또 하나의 견해는 ‘유희적(遊戱的) 존재’라는 점이다. 여기서 ‘유희’라는 말은, 단순히 ‘논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창조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동물은 먹이를 찾아 배를 불리고 나면, 쉬거나, 자거나, 아니면 뒹굴면서 놀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의식주를 위한 생계 활동 이외에도, 풍부한 사상의 세계에서 다양한 창조적 활동을 전개한다. 여기에는 음악, 미술, 무용, 연극, 스포츠, 그리고 문학 활동 등이 포함된다.
또,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점이다. 물론, 동물들 가운데에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어 떼를 지어 살거나 어느 정도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사회 생활이나 인간이 이루고 있는 복잡 다양한 사회 제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것이다.
인간은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화에 의하여 다른 동물 이상의 존재로 간주되기도 한다. 인간은 한 사회의 언어, 지식, 기술, 예술 등을 배움으로써 자기가 속한 사회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러한 참여의 과정이 곧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 하겠다. 또, 인간은 오랫동안 축적되고 계승되어 온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인간을 ‘문화적 존재’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일반적인 인간의 특성에 따르면, 인간은 대체적으로 육체적 욕구 체계를 가진 점에서는 동물과 유사하지만, 도덕적, 정신적 체계에서는 동물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동물이 본능에 의하여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데 비하여, 인간은 이와 달리 의식적으로 행위하며, 스스로 가치를 추구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인간성이 상실된 경우를 보고 우리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기심이나 잔인성으로 말하자면, 어떤 경우에는 인간이 동물보다 더한 행동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화와 산업화, 도시화로 치닫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에는 전반적으로 인간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 자체에 대하여 더 한층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2) 다양한 인간관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연구해 왔으며, 인간관은 종교나 학문적 관점, 연구자의 입장에 따라 제각기 그 주장이 다르다.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인간의 본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개성이 서로 다르더라도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인간의 본성에 관한 학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대체로 성선설(性善說), 성악설(性惡說), 그리고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 혹은 백지설(白紙說)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선설은 사람이 생득적으로 순선(純善)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육체를 지닌 존재이기에 정욕(情慾)이나 환경에 의하여 악행을 자행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반대로 성악설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이나 감성적 욕구가 악할 수 있기 때문에 악한 충동이나 공격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성무선악설 혹은 백지설은, 선악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선택과 판단이나 환경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유교에서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천(天)의 기품과 지(地)의 형상을 가장 완벽하게 부여받은 중간적 존재자이며, 우주 만물의 이치가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욕(私慾)이 본성을 가려서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자신을 억제하고 사람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 방식으로서 군자(君子)는 도덕적 실천과 학문의 연마를 통해서 날로 상달(上達)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인간 자신이 도리를 다함으로써 천지 조화에 기여하고, 만물과 화육(化育)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보는 이와 같은 유교의 인간관을 윤리적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심성을 본래 청정(淸淨)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인생의 모습은 무지(無知)와 탐욕에 의해서 ‘고(苦)’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은 ‘깨달음’을 통하여 행복을 누리며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본다. 대승 불교에서는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보살(菩薩)을 제시하고 있는데, 보살이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가르쳐 자비(慈悲)를 구현하게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와 같이, 불교는 인간이 현실적 고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인생론적 입장에서 인간을 조명하고 있다.
도교에서는, 유교처럼 규범적 측면에서 인간다움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인위(人爲)에 의하여 본래의 모습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하며, 그와 반대 되는 ‘무위(無爲)’의 자연스러움을 들고 있다. 이렇게 세속적인 생활을 초월하고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의 흐름에 내맡기고 살아가는 것을 그 이상으로 삼는다. 이와 같이 지인(至人)이나, 신인(神人), 혹은 천인(天人)을 이상적 인간관으로 생각하는 도교의 인간관은 자연적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유기적 물질이고, 그 물질이 발전한 산물로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 인간에게도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이 그 법칙을 알며, 그 법칙대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와 같은 자연주의적 관점은 서구 인간관의 주류를 이루는 합리주의적 인간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합리주의적 인간관에 의하면, 사람은 이성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때에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소우주(小宇宙)로서 개개인은 이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절대적 존재이고 평등한 존재이다. 이러한 이성이라는 개념이 생성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인간의 생존을 위한 도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오늘날 인간의 이성과 자연의 법칙은 서로 분리되어, 인간의 이성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자연을 이용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성의 힘으로 인간은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고 비판하며, 반성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서구 인간관으로 크리스트교적 인간관이 있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을 신(神)의 모사(模寫)로 여기고 자유 의지와 창조 능력을 가지며, 문화를 창조하고 도덕적 책임이 있는 존재로 보고 있다. 또, 인간은 자연보다 존엄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크리스트교적 인간관은 인간의 영적(靈的) 본성과 그 불멸성에 관한 증거를 신의 계시(啓示)를 통해 얻는다. 원죄(原罪)를 지은 인간이 구원을 통하여 영생할 수 있음을 속죄주(贖罪主) 크리스트가 신의 아들로서 그것을 증명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 된 인간관은 고대 단군의 건국 이야기에서 비롯된 홍익 인간(弘益人間)의 인간관이다. 홍익 인간은 풍요한 삶과 선량한 인심, 화평한 사회를 추구하는 인도주의적 이념이다. 이는 인간 존중과 이타주의 및 평등 사상을 담고 있으며, 천지 조화라는 묘합(妙合)의 원리를 토대로 한다. 따라서, 유교의 왕도(王道) 사상이나 불교의 자비를 실천하는 보살행(菩薩行)도 홍익 인간의 이념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홍익 인간의 정신은 전통적인 윤리 사상의 원류가 되어 우리의 민족 정신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또다른 인간관은 삼국 시대로부터 고려 시대를 거쳐 발전된 불교적 인간관으로, 화쟁(和諍)과 오수(悟修)에 따른 조화를 중시한다. 인간은 내적으로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모두 존귀하고 평등한 존재라는 생각이다. 만약에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화(和)를 통해서 조정할 수 있으며, 인간은 계속되는 수행으로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고 그 희열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적 인간관은 인간의 심성을 순선(純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본성은 육체적 욕망 때문에 선악의 기로에 서게 되고 악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마치 맑은 거울에 때[垢]가 묻듯이 욕심[人欲]으로 더럽혀지므로, 이것을 씻어 내기 위하여 부단히 공부하고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적 인간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보고 있다. 우주의 기와 인간의 혈기를 엄격히 구분하여 인간을 기혈적(氣血的) 존재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자연 앞에서 독존하는 자율적 인격의 주체로 파악하고, 누구나 평등하게 자신의 욕구를 발현하며 충족시켜 나가는 현실적 존재로 보고 있다. 따라서, 실학자들은 백성들의 경제적 안정과 위민 민본(爲民民本)의 개혁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성리학이나 실학 이외에도 우리 민족의 신흥 종교인 동학의 인간관이 등장하였다. 동학에서는, 천주를 모시라(侍天主)는 교시를 강조하였는데, 모두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과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의 뜻을 잊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무궁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동학의 독특한 인간관이다. 이러한 사랑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의 본성과 그에 따른 인간관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인간은 어떤 고정 불변의 실체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자신의 의지와 교육적 노력, 그리고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되어 간다. 그러므로 인간을 한 마디로 결론지어 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을 어떤 고정된 것으로 정형화시키지 말아야 하겠다. 오히려 우리는 인간이 미완성의 존재로 태어나서 점차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나 이상을 향하여 정진하는 자세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겠다.

   (3) 인간의 삶과 윤리의 필요성

인간의 다양한 삶 속에서 왜 ‘윤리’가 필요한 것인가? 윤리의 의미에 대하여 알아보자.
윤리라고 할 때에 ‘윤(倫)’자는 무리, 또래, 혹은 질서 등을 뜻하고, ‘리(理)’는 ‘옥을 다듬다’에서 유래되어 이치, 이법, 도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윤리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즉 인간 관계의 이법(理法)이라고 할 수 있다. 짐승의 세계에서는 윤리적 현상을 찾아 보기 어려운데, 이와는 달리 인간의 세계에서는 윤리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인간에게만 윤리 현상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 인간의 어떠한 특성들이 윤리 현상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윤리에 따르는 생활을 불가피하게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먼저, 윤리란 한 사람 혹은 사회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하여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도록 스스로 행동을 규제하는 데 꼭 필요하다. 이것은 한 사람 혹은 사회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게 의식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짐승들도 다른 짐승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지만, 어떤 짐승도 의식적으로 해를 끼치는 일은 없는 것이다.
또, 짐승들은 그와 같은 행동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없으며, 스스로 그런 행동을 자제(自制)할 줄도 모른다. 짐승들은 타고난 본능에 따라 기계적 혹은 조건 반사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에는 윤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은 생각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을 이용하여 엄청나게 큰 힘을 가질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나 사회 집단에게 의식적으로 고통을 가하거나 심각한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옳지 못한 행동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의식적으로 그와 같은 행위를 자제할 수 있다. 즉, 인간만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자유 의지가 전제되어야만 윤리가 성립한다. 사람이라도 정신 질환 때문에 정상적으로 자유 의지를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를 끼쳤을 때에만 우리는 그 사람이 나쁘다고 비판하고 그 책임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어진 본성에 따라 기계적으로 행동하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는 앞에서 성선설과 성악설, 그리고 성무선악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최근에는 인간이 항상 선하거나 악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후천적인 영향이나 교육에 따라서 악해지거나 선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구체적인 인간은 전적으로 선하지도 않고 전적으로 악하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을 선하게 하거나, 적어도 덜 악하게 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착한 사람이 그렇게 악하게 되었다면 그 원인을 제거하고 본성을 되찾도록 해야 하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다면 그 악이 노골화되지 않도록 억제되어야 할 것이다.
윤리는 인간의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필요한 것이다. 인간이 항상 선(善)하면 윤리가 필요하지 않으며, 항상 악하다면 윤리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개인의 자유 의지나 사회 성원들의 결심에 따라서 좀더 선하고 질서 있는 사회가 될 수도 있고, 더욱 악하고 무질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는 반드시 윤리가 필요하고 또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또, 윤리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하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되어 있고, 생존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나 행복도 그들과의 관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능력을 개발하거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듯이, 인간이 당하는 고통도 대부분 다른 사람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윤리적 행위란, 인간 관계를 얼마나 정의롭고 평화롭게 만들며, 모두가 자아를 성취할 수 있게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러한 입장이 바로 상대론적 윤리설(相對論的 倫理說)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상대론적 윤리설에 의하면, 한 사회의 목표나 그 성원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행위는 인정을 받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비난을 받거나 제재를 당함으로써 옳은 행위와 그른 행위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행위 가운데는 반드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다. 이러한 규범이 지니는 구속적 속성으로 인하여 윤리 규범의 필요성을 당위적 입장에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이른바 절대론적 윤리설(絶對論的 倫理說)의 입장이다. 절대론적 윤리설에 의하면, 이상적인 도덕 사회를 구현하려면 언제, 누구에게나 보편 타당한 절대적인 행위 법칙이 있어야 하며, 이러한 법칙이야말로 완전한 도덕을 실현하기 위한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왜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가하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이기심(利己心)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계발하여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재산, 권력, 지위, 기회 등은 충분히 주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모든 사회에서 이런 재화는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개인들 간에 경쟁은 불가피해진다.
힘이나 기회를 가진 사람은 그런 것을 못 가진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면서까지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한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이기적 심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대로 이를 방치하게 되면 약육 강식(弱肉强食)의 무질서로 인하여 사회 전체가 마비되고 만다. 따라서, 약자는 항상 강자에 의하여 희생되고, 강자는 그보다 더 강한 자에 의하여 손해를 보게 되므로, 공동 생활뿐만 아니라 종족의 생존까지도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기적이고 악한 성격만이 아니라 이타적이고 착한 성격도 있다. 인류는 선한 마음과 이성, 그리고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약육 강식의 무질서를 막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 제도를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의와 윤리, 그리고 법령과 규칙이라 할 수 있다.
예의와 윤리는 개인이 자율적으로 자기의 행동을 규제하도록 하는 것이고, 법령과 규칙은 물리적 힘과 강제를 통하여 타율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제도이다. 예의는 규제력이 약하고, 문화나 지역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충분하지 못한다. 그런데 법률은 질서 유지의 효과가 크지만, 자율성을 핵심으로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위신에 위배되고, 인간 관계를 경직시키며,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어느 사회든지 법률 제도가 있으나, 가능하면 법이 없어도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것은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윤리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자율적으로 규제하도록 하면서도 예의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더욱 질서가 확립되고 인간미 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으며, 개인의 자유도 확장될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이라고 더 윤리적으로 행동하면 사회는 그만큼 더 좋아진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윤리 규범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처할 때마다 반드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윤리 규범 중에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와 같이 어느 사회에나 공통된 보편적인 규범이 있고, 그 사회에만 독특한 규범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러한 규범들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면 사회 질서가 확립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부당한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윤리 규범을 공유하면, 그들은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게 되며, 전체적인 유대가 강화된다. 이와 같이 사회 규범은 사회 통합(社會統合)과도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회의 윤리 규범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불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는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 성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규범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행동하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잘못된 사회 규범은 사회 지도자나 윤리 문제를 다루는 학자, 또는 교육자들이 신중히 검토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 성원들의 동의를 얻으면 규범을 고칠 수 있고, 어떤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바뀌기도 한다.
이와 같이, 윤리 규범도 변하고 삶의 여러 모습도 바뀔 수 있으나, 윤리가 없는 인간의 삶은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고등학교에서 ‘윤리’라는 교과목을 배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윤리과의 교육 내용은 청소년으로서, 또 나중에 성인이 된 뒤에도 지켜야 할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며, 그 핵심 내용은 개인 윤리, 사회 윤리, 그리고 국가 윤리로 구성되어 있다.


연 구  문 제         


1.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서양의 관점에서 비교해 보자.

2. 우리나라의 서구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인간화 현상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토론해 보자.

3. 한국인의 인간관을 열거하고, 현대 산업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를 밝혀 보자.

4. 예의와 윤리, 법률은 각각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고, 이 중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장 이상적인 것이 윤리임을 설명해 보자.

5. 사회 생활에서 윤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인간의 본성과 관련시켜 의견을 나누어 보자.



2. 자아 실현과 인격 완성

   (1) 삶의 의미와 목적

우리는 평소 습관대로 행동하며, 자기의 행동이나 삶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충격을 받거나 조용한 시간을 가지게 되면, 우리가 왜 살아가며, 사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분명하고 확실한 해답을 발견하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사람만이 그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고, 그런 질문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스스로 옳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간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자신들의 삶의 의미나 목적에 대해서 한 번도 반성해 보지 않고, 그저 남들이 설정해 놓은 삶의 목적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 가치나 의미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며, 그러한 선택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각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자신의 선택이 자기의 삶의 방향과 의미를 경정하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잘못된 선택이나 그에 따른 삶은 한 번밖에 없는 일생을 매우 비참하고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목적을 지니고 살아야 하며, 또 나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서 깊이 반성해 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사람들이 선택하는 구체적인 삶의 목적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삶의 방향은 사회적 배경에 따른 가치관의 차이, 자신이 처한 개인이나 사회적 상황, 타고난 능력이나 받을 수 있는 교육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매우 다양하게 선택되고 그 의미가 결정된다. 어떤 사람은 예술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정치에 헌신하기도 한다. 곤충 연구를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육자가 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은 다양성은 개인이나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선택하는 결정이나 간직하는 가치를 가능한 한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의 삶을 가치 없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다른 사람이 가지는 삶의 목적이나 의미에 대해서 부당하게 간섭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삶이 똑같이 가치 있고, 그들이 선택한 삶의 목적이 모두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욱 존경을 받고, 의미 있는 살아가기도 한다. 아무래도 자기 이익만 챙기고 다른 사람의 권리나 이익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존경을 받기 어려우며, 여러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은 존경을 받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삶이 있는가 하면, 모든 사회에서 훌륭한 것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는 삶도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들이 있다. 그것은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나 사회 전체에 부당한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어야 하고, 자신이 보람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아무리 다원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사회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조건은 누구에게나 요구될 수 있고 또 마땅히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무시되면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지고, 그 사회의 존속 자체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삶이라도, 그것이 남에게 고통을 주고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좋은 삶이라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좋은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와 달리, 정직하게 일하여 열심히 돈을 벌고, 그 돈을 정당하게 써서 사회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준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자유 방임주의자들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면 그것이 사회에도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러한 주장이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이나 사회 전체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별다른 의미나 가치가 없다면, 그런 삶은 불행한 삶이며, 이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노예가 되어서 땀흘려 일한다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보람이나 의미도 없는 비인간적인 삶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고상한 삶은, 남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만족에 그치지 않으며,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자신이 희생하고 고통을 당하더라도 보람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도 매우 이상적인 삶이 될 것이다. 교육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산골이나 도서 벽지에서 학생 지도에 전념하고 있는 교사들이 있으며,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독립 운동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의사(義士)나  열사(烈士)들도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이 타인이나 동포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할 경우, 그러한 삶은 더욱 가치 있는 삶이며 그 생명력도 길어질 것이다.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선생이 “개인이 제 민족을 위해 일함으로써 인류와 하늘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고 한 것도 바로 그것을 뜻하는 말이다.

   (2) 자아의 발견과 실현

삶의 기본적인 목적 중의 하나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보람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이 나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이 스스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한 사람의 삶의 질(質)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종래에는 삶의 조건을 설명해 주는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지표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신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리며 그 곳에서 즐거움을 찾느냐 하는 주관적 지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세속적인 삶의 목적이 지배적인 오늘날의 일반적인 추세 속에서도, 세계의 일각에서 이른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안정을 1차적 관심사로 여기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점차로 ‘삶의 질’ 문제로 관심이 옮겨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지적(知的). 심미적(審美的) 만족에서부터 사랑, 존경에의 욕구를 실현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종래에는 삶의 조건을 설명해 주는 객관적 지표 - 주택, 이웃, 건강, 경제 형편, 결혼, 자녀 양육, 집안일, 친구, 여가, 교육, 정부(政府), 직업 등 - 의 개선만을 삶의 목적과 깊이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리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느냐.’ 하는 주관적 지표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보아도, 삶의 목적에서 자아의 발견과 그 실현이 중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찾아 내고 깨닫기가 쉽지 않다. 왜냐 하면, 그들의 관심은 주로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에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깊은 반성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자아’에게 눈을 돌릴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도 쉽지 않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올바로 아는 것이다. 자아의 발견이란, 단순히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조건에 처해 있으며, 어떤 가능성과 이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하여 올바로 아는 것이다.
자기를 올바로 알려면 자신에 대하 관찰이나 반성만으로 부족하다. 자연과 사회 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그들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에 대한 지식들은 서로 상관 관계에 있으므로 모든 것을 알기 어려우며, 따라서 누구도 자신을 완전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공자(孔子)도 50세가 되어서야 천명(天命), 즉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알았다고 하였다. 다만, 어떤 사람은 자신을 좀더 잘 알고, 어떤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좀더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인간과 사회, 문화와 종교 등과 같은 여러 영역에 대한 지식 수준을 높여야 하며, 지식이나 경험이 맣은 지혜로운 사람들의 가르침과 충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 하면, 나에 대하여 남들이 더욱 잘 아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종합적이고 최종적인 결정은 각자의 책임이지만, 남들의 의견과 충고를 많이 참고하는 것은 매우 지혜롭고 바람직한 태도라고 하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이나 개인의 일생은 이미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아 실현에 대해서는 제한된 의미밖에 부여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의 성리학에서도, 자아 실현이란 인간에게 본래 주어진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사람이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본성이나 운명에 순응 하면서도 타고난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때에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로우며, 개인은 가장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다고 믿었다.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도, 씨가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이미 씨눈 속에 그러한 가능성이 들어 있으며, 개인의 자아 실현도 그와 같은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세계관에 입각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주어진 제약과 조건에 순응하면서 본성에 충실함으로써 행복과 평화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나 개인에게 독특한 조건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에 잘 적응하면서 동시에 잠재적인 가능성을 실현하고 자기가 설정한 삶의 목적을 성취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에 그것은 그 개인에게 만족과 성취감을 가져다 주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도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주어진 조건이나 제약에만 너무 수동적으로 얽매여 자유와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것도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하겠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제약을 하나씩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을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이란 주어진 조건에 의하여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계속 변하고 발전하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 나아가는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얼마나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가에 따라서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키우고 이상을 실현하자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품성들이 있다. 이러한 품성들은 인격적 성취와도 직결되고, 동시에 자아 실현을 하기 위한 조건들이라 하겠으며, 다음과 같은 점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먼저,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자아 실현은 매우 어렵다. 건강은 육체적, 정신적 활동의 기본 조건이 되므로, 개인의 이상을 실현하고 사회에 공헌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과 적당한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 자아를 실현하려는 사람은,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절제란, 주어진 본능과 욕망을 좀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적절하게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댐에 갇힌 물을 한꺼번에 내려보내면 홍수를 일으키지만, 잘 조절하여 조금씩 내려보내면 매우 효과 있게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 아니면 참지 않고, 참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非人不忍 不忍非人).”라는 옛 사람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고 분함과 어려움 등을 스스로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유교에서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의 덕(中庸之德)도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준다고 하겠다.
끝으로,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이상을 성취하려면 창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주어진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정보·통신 산업이 고도로 발달되었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암기해 두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고, 아아가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는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뉴턴(Newton, I., 1642~1727)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미 주어진 대답 이외에도 다른 대답과 방법을 찾아보고, 좀더 색다르게 생각해 보는 습관을 키워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이 창조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주적이어야 한다. 자주적 인간이란, 창조적 인간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지만, 같은 인간의 다른 측면을 나타내는 개념이기도 하다. 단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이 하라는 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사회에 공헌하기 어렵고, 자아를 제대로 실현하려는 사람이라도 할 수 없다.
사람은 사회를 떠나 혼자서 자아 실현을 이룩할 수 없다.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가 질서 있고 평화로워야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평화가 위협받는 곳에서는 학문이나 예술에서 위대한 업적이 이루어진 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갈등 관계가 심화되면 개인의 창조적 활동이 위축된다. 그러므르 우리는 스스로 도덕적인 가운데 자아 실현을 취해서 노력할 때, 자기 자신은 물론 사회 전체를 발전시키고 평화롭게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정신적, 사회적 자유와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 너무 가난하거나 사회적 신분이 낮아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아무리 능력있고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어렵다. 이제는 옛날에 비해서 그와 같은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커졌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도 각자가 자아 실현에 힘쓰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하겠다.(28/)

   (3) 인격 완성을 위한 노력

우리는 인격이나 인격자라는 말을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한다. 인격자는 우리가 준경하고 숭배하는 대상이며, 비인격자는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된다. 그러나 실제로 인격이란 무엇을 뜻하며, 인격자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사람에 따라서 견해의 차이가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인격의 의미가 불분명하고 개념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은 자아 실혐과 함께 인격 완성을 삶의 목적 중에 가장 으뜸으로 꼽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서도 인격이나 인격 완성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동양 사회에서 말하는 인격의 ‘격(格)’은 인간 노릇을 하는 ‘법식(法式)’, 인간으로서의 ‘표준’과 ‘자격’을 뜻한다. 동시에 개인으로서 지니는 지적, 정서적, 의지적, 신체적 특징 등을 포괄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인격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란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이제는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란 뜻도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격을 도덕적인 자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인격 완성이란 자기 반성과 훈련을 통하여 도덕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품성을 갖추게 된 상태를 뜻한다.
인격을 완성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에 대하여 우리 조상들은 덕(德)을 실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유가(儒家)에서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몸에 익히는 것을 덕을 쌓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덕을 출중하게 쌓은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하였다. 불가에서도 인격을 완성한 사람은 현세적 쾌락과 고행의 양 극간에 빠지지 않고 중도(中道)를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중도는 양 극단에 있는 욕망을 누른다는 뜻이다. 반면에 도가(道家)에서는 인간의 덕은 몸에 익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에 이미갖추어져 있는 절대 불변의 진리를 체득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무위(無爲)와 무욕(無慾)의 상덕(上德)을 강조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덕의 실현 이외에도 일상적인 행동거지(行動擧止)를 매우 중시하였다. 우리 조상들이 수신서(修身書)로서 들겨 읽던 ‘계몽편’에서는, 이른바 ‘구용(九容)’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발의 동작은 무게가 있고(重), 손가짐은 공손하고(恭), 눈은 단정하게 보고(端), 말이 적어 입은 멈추어 있는 듯하고(止), 말소리는 침착하여서 고요하고(靜), 머리는 곧게 유지하고(直), 호흡은 조용히 엄숙하게 하고(嚴), 서 있는 모습은 덕스럽고(德), 그리고 얼굴빛은 장중해야 한다(莊)는 의미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인격은 전통적인 덕목이나 품성과 함께, 세계 인류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덕목도 포함되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우리의 전통적인 덕목 중에서 유지하고 지켜야 할 것을 살리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부족한 민주 사회의 적목들을 추가하여 양자 간의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에서 계승, 발전시켜야 할 우리의 전통적인 덕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 가지 중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불변하는 덕성으로 알려진 경천 애인(敬天愛人)과 홍익 인간(弘益人間), 오상(五常)과 무위(無爲), 그리고 자연의 도덕적 명령을 따르는 순천 절물(順天節物) 등을 들 수 있다.
경천 애인은 고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중요시해 온 사상으로, 하늘[天]에 대한 숭배를 뜻한다. 홍익 인간의 사상은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바로 서면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도 바로 서게 된다고 보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살리기 좋아하는 것(好生之德)이라 하겠다. 이는 인간 세상을 밝은 빛으로 교화하고 다스려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인간 존중의 정신을 뜻하는 것이다.
오상과 무위는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으며, 순천 절물(順天節物)은 자연에 따르고 절도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자연을 완정(完整)한 것으로 보고, 인간은 그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고 생성 작용을 그치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욕심을 가지고 항상 남보다 더 가지려 하기 때문에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므로, 물질은 궁색하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되며, 경제적 수치나 물량에만 너무 급급하지 말고 욕망을 줄이며 소박하게 살 것을 권장하였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 새롭게 강화되고 보강되어야 할 덕목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민주 사회에서 요청되는 덕목으로 인권 존중(人權尊重)과 공정성(公正性), 준법 정신(遵法精神)과 책임감(責任感), 그리고 정직성(正直性) 등을 들 수 있다.
인권 존중은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자기 자신의 것 못지않게 존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 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바탕인 평등과 정의의 원칙을 내면화(內面化)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덕목은,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황금률(黃金律)이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원칙에 의하여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다.
공정성(公正性)이란,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 등을 분별하고, 그 정도를 평가할 때에는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같은 고향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러도 두둔하거나 자기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해서 상대방의 훌륭한 점을 무시해 버린다면, 사람들의 정의감에 상처를 주고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많은 보상을 받게 하고, 게으른 사람은 그만큼 손해를 보게 해야 한다. 일하지 않거나 조금 해 놓고 많은 보상을 받르려 하거나, 잘못을 저질러 좋고도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것은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공정성은 사회 정의의 기초이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덕목이다.
준법 정신이란, 법을 잘 지키고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법은 역시 국민 전체의 이익이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들이 모두 법을 잘 지켜야 원만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통 질서를 잘 지키고 유원지에서 행락 질서를 지키는 것과 같은 준법 정신은 민주 사회를 유지하는 바탕이 된다.
책임감은 자기에게 부여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내는 마음으로, 사회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는 데 필수적 요소이다. 또, 일단 약속을 하게 되면 지킬 책임과 의무가 따르게 되므로,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은 사회 성원으로서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라고할 수 있다. 국제 사회에서도 책임감이 부족한 국가는 신용을 잃게 되어 국제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필수적인 덕목은 정직성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여야 다른 사람이 그것을 믿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정보 사회인데, 그 정보가 올바르고 정확하지 못하다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신 풍조가 생겨서 인간 관계가 악화되고, 정보의 진실성을 거듭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어 사회 전체의 응집력이 약해진다. 따라서, 비록 우리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고 정직하게 행동해야만 현대 사회에서 인격자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공정하지 못하며, 준법 정신이나 책임감이 약하고 정직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들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쁜 사람이 더욱 많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또한, 사회는더욱더 무질서하고 살기 힘들게 되며, 마침내 모든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당장에 손해를 안 보려고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면, 나중에는 더욱 큰 손해를 가져다 주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인격자는 자기가 손해를 보면서도 끝까지 정직하고 공정하며, 책임감 있게 말하고 행동하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자지의 권리처럼 존중하는 사람이다. 사회는 그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인격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아지면 그 사회는 그만큼 더 좋아지므로,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인격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연 구  문 제         


1. 자기 자신과사회적 관점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삶은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2. 어떤 사람이 자기의 운명론을 받아들이게 되면 자아 실현이 어려운 까닭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

3. 우리가 가진 가능성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품성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보자.

4. 현대 산업 사회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데 과거와는 달리 어려운 점과 용이한 점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을 지적해 보자.

5. 인격 완성을 위해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생각해 보고, 그에 수반되는 전통 사회와 민주 사회의 덕목 간의 갈등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해 보자.


3. 인생에서의 청소년기

   (1) 청소년기의 특징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지금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에 대하여 무관심할 때가 많다. 따라서, 어떤 시기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그 중요성을 깨닫기도 하고, 또 그렇게 소중한 시기를 허송한 데 대하여 후회하기도 한다. 청소년기는 일생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기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청소년기는 우리의 일생 중에서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 있으며, 그 시기를 어떻게 잡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의 청소년기는 주로 아동이 성인의 역할을 익히는 시기였다. 13, 4세의 아동으로서 혼례를 올리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 16세쯤에 두레 공동체의 성원인 ‘두레꾼’이 되었다. 이처럼, 아동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 기대나 생산 체제에 부응하고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성인기로 이행(移行)하게 되었다.
유교적인 전통 사회에서 아동들의 행동 지침이 되었던 ‘소학(小學)’에 의하면, 13세가 되면 음악을 배우고 시를 외우며, 15세에 성동(成童)이 되면 활쏘기와 말타기를 배우고, 20세가 되면 관례(冠禮)하여 비로소 예(禮)를 배울 수 있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전통 사회에서의 청소년기는 대개 13세부터 성숙한 아동이 되는 15세를 거쳐 관례를 하게 되는 20세 전까지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아동기와 성인기의 중간 단계인 청소년기를 인정한다. 이 시기에는 연령의 한계를 분명하게 그을 수 없지만, 보통 사춘기가 시작되는 12, 3세에서부터 신체적 성장이 거의 끝나는 23, 4세까지를 청소년기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성인으로서 인정받으려면 결혼이나 경제적 자립 등의 요소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청소년기의 시작은 주로 생리적 차원에서 결정되는 데 반하여, 청소년기의 종료는 사회·문화적 조건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의 특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체적 성숙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적(性的) 발달 및 정신적 성숙과 관련되는 정체성(正體性)의 추구이다.
성적 발달은 신체 구조나 외양이 달라지고 목소리가 변하는 이른바 2차 성징(性徵)이라고 하는 생리적 변화가 나타나고, 성인으로서의 신체적 특징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변화는 여자가 남자보다 빠르며, 또 같은 성의 경우에도 개인에 따라 빠르고 늦은 차이가 있다. 또 성적 발달에 빠른 신체적 변하는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떤 청소년은 자신의 신체적 성장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동시에 희망과 활력에 넘쳐서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발달이 더딘 경우에는 열등감을 느끼며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소외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정체성의 추구는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구하면서 자기의 정체감(正體感)을 확립하는 것이다. 아동기를 거쳐 새로운 시기에 접어든 청소년들은, 전에도 그러한 의문을 가져 보았겠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와 같은 의문을 풀어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혼자서 깊이 생각해 보기도 하고 부모나 친구들의 견해를 듣기도 하며, 학교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로부터 상담을 받기도 한다. 혹은 자기 자신이 직접 관심 있는 부문에 대하여 공부하거나 대중 매체와의 접촉 들을 통해서 동일시(同一視)할 대상으로서의 인간상을 설정해 보기도 한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신체적 성숙과 정신적 성숙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도록 수련을 쌓는 일이다. 신체적인 성숙도 그렇지만 특히 정신적인 성숙에 해당하는 정체성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되면, 자기의 일생을 그르칠 수도 있다. 정체성의 핵심 요소인 윤리 의식 등은 청소년기에 일단 어떤 방향으로 정해지면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도 잘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올바른 가치관이나 생활 태도를 갖추는 것이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겠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청소년들이 지니는 윤리관이나 생활 태도에 대해서 알아보면,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첫째, 청소년들은 동료 집단의 행동 지침이나 가치를 매우 중시하는경향을 나타낸다. 성인이나 사회가 정하는 가치를 거부하면서도 동료 집단의 가치를 중시하고, 그것에 일치되지 않거나 반대 되는 것은 배척하려고 한다. 이는 외부로부터 단절되었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집단 내에서 심리적 보상을 받으려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자위적(自慰的)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청소년들은 아직도 윤리적 자세나 가치 판단의 기준이 불명확하여 그 자세난 행동에 일관성이 결여되기 쉽다. 그것은 아직도 명확한 자의식(自意識)이 형성되지 않아서 상황에 따라 적용하는 가치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일반화된 가치를 적용하지 못하므로 선택의 기복이 크고, 아동기 때보다 덜하지만 아직도 선택이나 결정을 제대로 할 만큼 지적(知的), 사회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하겠다.
셋째, 청소년들은 성인들의 윤리적 자세나 가치에 대해서 무조건 도전적인 경우가 많으며, 이것을 ‘이유 없는 반항’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성인들이 내세우는 기성 사회의 고정된 윤리적 가치 기준을 거부하고, 객관적 기준도 없이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 자의식의 성장에 따라 세계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하며, 자신들의 가치 체계를 창조하려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넷째, 청소년기에는 실재하는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고 배척하려 하며, 자신의 결벽성을 내보이려 한다. 이것은 청소년기의 자기 중심주의를 뜻하는 것으로,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설정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청소년기가 지니는 이와 같은 윤리 의식이나 가치관의 특성은 어느 정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나타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녔다고 하겠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특성에도 약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구미(歐美)의 선진국에서 볼 수 있다.
이른바 ‘신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동료 집단의 가치를 중시하고 가치 판단 기준이 불명확한 점과, 성인들의 윤리관이나 가치에 대하여 불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기성 세대에게 무조건 반항가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점에서 상당히 달라졌다고 하겠다. 가정 생활에서도 그 이전의 세대들이 전통적인 가정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집을 뛰쳐나간 데 반하여, 부모와 친밀하게 살아가는 신세대들이 늘어 가고 있다고 한다.
또 신세대 젊은이들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자세보다는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며, 일자리도 그에 맞는 것을 선호라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사회학자들은, 청소년기를 벗어나 성인 세대에 접어들면서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예 기간(猶豫期間)’의 연장이라고 한다. 또,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느끼는 세대들’이 미래에 대한 꿈을 상실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앞에서 지적한 일반적인 윤리 의식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신세대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나타내고 있다. 여러 연구 단체에서 조사, 발표한 바를 종합해 보면, 우리 청소년들은 다음과 같은 경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은 대체로 온건한 윤리관을 지니고 있어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근검 절약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으며. 성 윤리 면에서도 매우 건전하다. 또, 장래에 대해서 큰 희망을 지니고 있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치관에 있어서도 기성 세대보더 더 인간주의적이고 평등하며 합리주의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본받아야 할 윤리적 모형 문제에 있어서는 부모를 포함한 기성 세대에 대해서 불신감이 높은 편이고, 사회현실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잘 모르겠다는 윤리적 혼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 청소년기의 윤리적 과제

우리는, 청소년기의 당면 과제가 신체적 성숙과 정신적 성숙이고, 정신적 성숙 중에서도 일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자신의 정체성 확립이 가장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올바른 윤리관이나 생활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강한 윤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당면하고 있는 윤리적 과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삶의 방향을 올바르게 정하고, 자아 실현과 인격 완성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알아본 것처럼, 자아 실현은 자기가 타고난 소질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평소부터 꿈꾸어 왔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또, 자아 실현의한 모습인 인격 완성은 특히 윤리·도덕적인 면에서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높게 평가를 받는 인격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 실현과 인격 완성을 단기간 내에 이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삶의 과정을 통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므로, 청소년기에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실천에 옮기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일찍이 율곡 선생은 “먼저 그 뜻을 크게 하여 성인(聖人)으로써 목표를 삼고, 조금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아침에 할 일을 생각하고, 조반 후에는 낮에 할 일을 생각하며, 취침할 때에는 내일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는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놓고 젊어서부터 자아 실현과 인격 완성을 위해서 끊임없이 정진하였다.
둘째, 현대 사회의 생활 윤리를 이해하고, 우리가 직면하는 윤리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기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사회와 윤리’ 단원에서 별도로 제시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사회 윤리의 기본 요소만을 다루려 한다.
우리 나라의 사회 윤리는 한국적 전통 윤리와 서구적 시민 윤리의 조화 속에서 추구해야 하되, 어디까지나 우리의 전통 윤리를 중심으로 삼고 서구적 시민 윤리를 보충해야 한다. 즉, 우리의 가정, 직장, 사회 속에서 지켜야 할 윤리는 한국인으로서의 전통적 윤리 의식을 기본으로 삼고, 그밖에 부족한 부분은 서구의 시민 윤리적 요소를 가미해야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사회 윤리는 홍익 인간의 경천 애인(敬天愛人) 정신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오늘날, 인간성의 상실과 같은 현상 등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은 이러한 경천 애인의 정신을 망각하였기 때문이라 하겠다.
우리의 전통 윤리 중에서 또 하나 추가할 것이 효제 충신(孝悌忠信)의 도덕률이다. 부모에 대한 효와 동기 간의 우애, 맡은 일에 대한 성실과 동료 간의 신의는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생활 윤리의 기본인 것이다. 따라서, 시민 윤리적 요소인 원만한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한 준법 정신, 약속을 지키는 책임 정신, 사리에 따라 판단하는공정성 등이 추가되면 조화가 잘 이루어질 것이다.
셋째, 우리 국가와 민족에 대한 긍지 및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이상에대한 올바른 신념을 확립하여, 민주 복지 국가의 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과제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우리 민족과 국가가 지향하는 올바른 국가관과 이념적 시각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은 ‘국가와 윤리’ 단원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기본적인 방향만을 제시하기로 한다.
국가·민족적 정체성을 지니기 위해서 우리는 나라와 겨레에 대한 습관적이고 냉소적인 비판이나 평가에서 벗어나야 하며, ‘짧은 인생을 영원히 조국에 바친다.’는 생각으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또,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한 조상들의 노고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해외 동포들에 대하여 우리와 같은 혈족으로서 일체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증진시키려면 평소부터 대화나 회의 진행시에 효율적으로 자기 의견을 발표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며 모순된 점을 논리적으로 비판할 줄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토론을 통하여 서로 양보하고 협조하는 토론 문화를 배우고 익혀야 하며, 무조건 반대하거나 맹종하는 버릇도 없애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자본주의 윤리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 경제 문제나 현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창의와 혁신, 근검과 국산품 애용 등의 가치를 생활화해야 한다.
넷째, 통일의 조건과 아울러 통일 이후에 예상되는 상황을 이해하고, 통일 과업을 달성하는 데 이바지하려는 굳은 의지를 기르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과제를 통하여 우리들은 통일 국가를 실현해야 할 당위성을 깊이 인식하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통일의 과제와 전망’ 단원에서 충분히 언급할 것이므로, 핵심적인 요소만을 지적하려 한다.
청소년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는 민족 공동체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다. 분단 이후 반 세기 동안에 남북한은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속에 살아 오념서 심각한 민족적 이질화 현상을 보여 왔고, 상호간에 불신감과 증오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중대한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 핏줄을 타고난 동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이 통일을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신장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통일 의식을 불식하며, 예상되는 통일 과정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족 분단의 배경과 과정, 분단의 고통과 손실, 남북한의 통일 노력 등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파악하고,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과 조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통일 국가의 미래상을 그려 보고, 통일 국가의형성 과정이나 통일 이후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제반 문제에 대해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통일 의식과 안보 의식 간의 균형이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통일 국가의 실현 의지를 가지게 한다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안보 의식의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의 대남 적화를 위한 기본 노선이 변하지 않는 한 이러한 두 가지 의식 간의 균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통일에 관한 올바른 윤리 의식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고 하겠다.

   (3) 청소년기의 진로 탐색

청소년들은 주변 사람들이나 사물에만 의지하던 위치에서 점차 벗어나, 자신의 주관적 세계 속에서 자기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와 같은 자아 정체성의 확립은 머지않아 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반드시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청소년기를 ‘심리적 이유기(心理的 離乳期)’라고도 하는데, 이는 청소년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에 앞서 정신적인 독립을 꿈꾸며 서서히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장체 어떤 일을 할까?”, 또는 “나는 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고 그 물음에 대해서 스스로 답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물론, 자신의 생각대로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자신의 앞날을 설계해 보는 가운데 현재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여 고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물음이 사실상 같은 의미를 가진다면,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은 결국 ‘어떤 일을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장래의 사람됨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함으로써 필요한 재화를 얻고 사회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또, 일을 해 나가는 가운데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재인식하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일은 인간에게 있어서 생계 유지의 수단이며 동시에 자아 실현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것이 일이라면, 바야흐로 아동기를 벗어나 성인기로 나아가는 우리들이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체계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누구나 자신의 이상에 맞는 일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서 자기의 꿈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고등 학교 과정은 청소년기 후반에 해당되며, 대학 진학과 취업으로 갈라지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우리들이 진로를 선택하면서 특히 유념해야 할 점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의 적성과 흥미, 능력이나 인성(人性)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학력을 위주로 한 우리 사회의 풍토는 청소년들의 자기 평가를 가로막고,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유연성과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무슨 일에나 고학력자를 요구하고 우대하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상급 학교 진학 만을 지상 목표로 삼도록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학교 교육이 학생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서 그 점을 키워주는 쪽으로 전환되어야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청소년들이 스스로 미래 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는 일이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사회의 주인공이 되는 때는 21세기이므로, 자신의 진로나 직업도마땅히 먼 앞날을 내대보고심사 숙고하여 선택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21세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가치관이 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에 따라 직업도 세분화되거나 새로 생겨나기 때문에 그 종류는 매우 많아질 것이 예상된다. 또,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과거에는 보수(報酬)나 지위(地位)가 중요시되었지만, 앞으로는 자아 실현과 자기 표현, 상호 독립성과 기쁨의 추구 등이 강조될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구태 의연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따져 자신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 하겠다. 우리들은 좀더 멀리 내다보는 가운데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파악하고 계발해 나가야겠다. 오직 자신에게 맞는 일과 직업을 통해서만 인생의 만족과 보람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청소년들은 자신의 진로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고 직업울 선택해야 한다. 어떤 직업이든 그것이 사회 생활의 일부이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나의 이익에 못지않게 그 일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이른바 ‘3D 기피 현상’은 직업의 사회적 의미가 점차 퇴색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어서 걱정스럽다.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인데,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모두가 외면한 채 쉽고 편한 일만 추구한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머지않아 정체(停滯)와 분열(分裂)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파국(破局)을 미리 막기 위해서, 우리 청소년들은 항상 자신과 사회 전체를 연결시켜 생각할 줄 아는 자세를 지녀야 하며, 특히 어려서부터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소중함을 체득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충분히 인식할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알맞고 실현 가능한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큰 회사의 사장이나 유명한 정치가가 되는 것도 좋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자동차 정비공을 꿈꿀 수는 없을까?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자의 길을 가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되는 것은 어떨까? 어떤 외적인 대가보다 자기 자신의 직업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알고 그 자체로부터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셋째, 청소년들은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며 준비하고 실행해 나가는 모든 과정에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사실상 타고난 소질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상을 구현하는 자아 실현은 일정한 직업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또, 윤리·도덕적인 차원에서 자아 실현에 도달하는 인격 완성이야말로 자신이 선택한 직업 활동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윤리·도덕적인 입장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기능적인 측면만 강조되어 직업이 사회적 지위나 재화만을 얻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릴 우려가 없지 않다. 따라서, 사리(私利)보다는 공익(公益)을 앞세우는 직업 윤리를 정립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청소년들은 일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진취적인 생활 태도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고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느 조사의 결과를 보면,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보다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비율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일을 권리보다는 의무로 인식하고,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가사(家事)를 분담하려는 의식이 거의 없으며, 단지 경제적 측면에만 자신의 역할을 한정지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학생들은 가사를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고 보지 않는 경향이 높아서, 앞으로 남녀 간의 역할 갈등이 예상되리고 한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녀의 역할이 가지는 동등성과 이질성, 그리고 상호 보완성 등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청소년기에 진로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 중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어디까지나 미래 지향적 안목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진로를 설정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얼굴이 서로 다른 것처럼 능력이나 적성도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을 지닌다. 이러한 개성을 최대한 계발하고 신장시킬 때에 그 개인의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남들처럼’ 생각하고 일할 것이 아니라, ‘남과 달리’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미래 사회 속에서 성공적으로 자아 실현을 이룩할 수 있다. 청소년기는 일생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기 시작할 때이다. 우리는 21세기의 주인공답게 자기 자신의 앞날을 깊고 넓게 계획하고 실행하여, 보람된 삶을 가꾸어 나가야겠다.



연 구  문 제         


1. 청소년기의 특징을 밝히고, 청소년과 성인과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열거해 보자.

2. 청소년기의 윤리적 특성을 자신의 구체적 행동과 관련지어 발표해 보자.

3. 우리 나라 미래 사회의 특징 속에서 청소년들이 당면하게 될 윤리적 과제를 제시하고, 그 해결 방안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어 보자.

4. 자신의적성과 능력을스스로 진단해 보고, 그것이 맞는 직업을 얘기해 보자.

5. 미래의 유망한 직업을 조사해 보고, 그것에 필요한 기능과 윤리적 자세를 알아보자.


Ⅱ. 사회와 윤리

1. 현대 사회의 윤리적 상황
2. 현대 사회의 생활 윤리
3. 현대




한글철학검색>브리테니커사전 검색
예문지의 기의철학 정리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