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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지매(2003-09-15 08:46:07, Hit : 2703, Vote : 192
 [철학고전읽기1] 러셀, "행복의 정복"

[철학고전읽기1] 러셀, "행복의 정복"
러셀,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는 대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이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이 갈구하는 ‘행복’은 바다 한 복판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눈에 들어온 황무지 섬과 같아서 좀처럼 올바르고 바람직한 것이기 힘들다. 반면, 철학자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행복의 정점(頂點)에 있을 때에도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묻고 ‘고통의 깊은 골짜기’의 맨 아래에 떨어져 있을 때에도 진정 이것이 어떠한 고통인지를 냉철하게 묻곤 한다. 그리고 물음과 사색을 통해 그들은 진정한 행복과 고통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려 하는 것이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도 이런 철학적 노력의 결과로 나온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이 주는 인상은 서태지의 음악처럼 강렬하다. 90년대의 서태지 음악이 사회의 지배적인 도덕과 가치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분출하고 있다면, 러셀은 이 책을 통해 19세기적인 당시 유럽사회의 가치관을 향해  냉철한 비판을 내뿜고 있다. 아울러 중년의 러셀은 이십대의 서태지보다 더 나은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단순한 비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행복’의 개념과 삶의 태도를 ‘철학자답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그는 지식인 사회의 지배적인 ‘행복관’에 대하여 포문을 연다. 그는 당시 지식인들의 행복관을 한마디로 ‘바이런적 불행(Byronic Unhappiness)’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불행이 우주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여 불행을 자랑으로 여기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이는 지금의 우리 지식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측면이기도하다. 즉, ‘바이런적 불행’에 따르면 진정 현명한 이는 삶의 무게에 대해서 늘 고민하기 때문에 심각하고 진지하다. 또한 ‘아무 생각 없는’ 대중과는 달리 ‘섬세한’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늘 ‘멜랑콜리(malancholy)’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러셀에 따르면 이는 ‘말 앞에 수레를 달아놓은 것 같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볼만한 어떤 (정당한) 형이상학적인 원리도 없다’고 주장한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꼭 그만큼의 낙관적으로 보아야 할 이유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쾌락주의자’라고 부른다. 세상은 밝고 긍정적이며 삶은 즐겨야 하는 것이다. 세상이 어둡게 여겨지는 것은 계속 어두운 자신의 내면에만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는 내면 세계에서 눈을 돌려 ‘대지와 접촉할 것을’ 강하게 호소한다. 현실에 땅을 디디고 적극적으로 삶 속에 뛰어들어 활동하는 삶, 밝고 건강한 행복은 바로 그 속에 있다.
  이어서 그는 불행의 원인과 행복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형이상학적인 원리에 입각한 분석이 아니다. 그가 다루는 주제들은 ‘경쟁’, ‘자극’, ‘피로’, ‘선망’, ‘죄의식’, ‘열의와 사랑’, ‘가족’, ‘일’, ‘비개인적 관심(impersonal interests: 취미활동 같이 생계와는 관계없이 그 자체로 좋아서 관심을 갖는 일)’ 등이다. 일상사에서 부딪히는 구체적인 삶 속에서 불행한 이유와 행복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이다. 실로 요새 유행하는 철학적 상담(philosophical counselling)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만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앞서의 항목별로 불행의 원인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에 대한 그의 일반적인 태도는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정리해 본다면 이와 같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빠져 나와 객관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삶과 세상에 대한 자비로운 애정과 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과 관심이 이제 다른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행복을 얻는 사람이다.”  

  러셀 특유의 유아(唯我)적인 독설이 가끔 나오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재치와 절묘한 비유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아가 하녀들의 질 저하를 우려하는 대목, ‘우월한’ 백인종의 출산율 감소를 걱정하는 부분도 있어서 지금으로서는 생생하게 느낄 수 없는 당시의 시대분위기도 ‘양념처럼’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책은 우리말로 많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서점가에는 별로 좋은 번역본이 남아 있지 않다. 아니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역(誤譯)이 무척 심하여 읽기 불편한 책이 한 권 계속 출간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오역을 무릅쓰고라도 이 책은 충분히 읽고 ‘즐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철학적 사유 방법을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어떻게 적용하고 현명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삶의 교과서’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철학적으로 일상 속에서 분석된 행복과 삶의 태도, 그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힘들고 아픈 부분을 치유할 치료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서평은 안광복(중동고 철학 교사, 서강대 철학과 박사과정)이 작성한 것입니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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