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철학게시판


  일지매(2003-09-15 08:49:55, Hit : 3931, Vote : 200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김영정(서울대 철학과)

I.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희랍신화에 나오는 제우스는 올림포스산의 주신이며 여러 신들의 왕이었습니다. 하늘의 지배자인 동시에 전세계의 통치자인 그가 하늘과 땅위에 있는 많은 아름다운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의 애정은 모든 여인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다른 여인들보다 특히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였습니다. 한번은 제우스가 이 여신과 9일 밤낮을 계속하여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그래서 9명의 뮤즈(muse) 여신들이 태어나게 되는데, 거기에는 ‘서정시’의 여신 에우테르페나 ‘비극’의 여신 멜포메네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9명의 뮤즈 여신과 그들이 각각 분담하는 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클레이오는 역사, 에우테르페는 서정시, 탈레이아는 희극, 멜포메네는 비극, 테르프시코라는 합창․가무, 에라토는 독창, 폴리힘니아는 찬가, 우라니아는 천문, 칼리오페는 서사시를 주관하였습니다.
이들 뮤즈 여신들은 바로 ‘창의성’을 상징합니다. 제우스신은 힘과 에너지를 상징하고 있으므로, 희랍신화에 따르면, 힘과 에너지가 기억과 결합하여 나타난 것이 창의성입니다. 이러한 희랍신화는 우리가 창의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사를 해주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들 뮤즈의 후예들인 시인이나 비극작가들을 자신의 이상국가에서 추방하였다가 후에 다시금 자신의 이상국가 속으로 받아들입니다. 김영정, 「플라톤 이상국가에서의 예술가의 지위」, ꡔ철학논구ꡕ, 제26집(1998), 35-44쪽, 서울대학교 철학과
그것은 초기 플라톤의 예술관에 따르면, 예술(창의적 작품)은 한낱 임의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따라서 진리와는 동떨어진 무절제한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었으나, 후기 견해에 따르면, 예술은 철학적 진리를 나타내는 상징적 상상력의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플라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상징(symbolism)이 그 본성상 상상적 형식 속에 가려져 있는 진리를 파악해 내는 통로일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상징적 상상력의 효용성을 인정하여 영감으로 충만한 뮤즈의 후예들을 자신의 이상국가에 다시 받아들이면서도, 무절제한 상상력이 가질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ꡔ법률편ꡕ 7권에서 플라톤은 예술가들이 이상국가로 되돌아오게 됨을 환영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들 매혹적인 뮤즈의 아들들에게 전적인 자유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연극을 엄정하게 검열할 것이며, 우리가 인정한 것만을 장려할 것이며 그렇지 못한 것은 금지할 것이다.” ꡔ법률편ꡕ, 817.

  아울러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예술을 모방이라고 본 점에서 상상력을 통한 기존 정보들의 새로운 변형과 조합을 예술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라 외양을 모방하는 화가와 시인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복제하지도 않습니다. 침대를 그리는 화가는 어떤 한 관점에서만 감각에 즉각적으로 보여지는 대로 그것을 그립니다. 시인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도 없이 신이나 영웅, 전쟁 등을 묘사합니다. 즉, 예술가들은 기존의 내용을 상상을 통해 새롭게 변형하고 조합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창의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된 정교한 정의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창의성에 대한 전통적인 세 정의를 다음과 같이 개략적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영채, ꡔ창의적 문제 해결 : 창의력의 이론, 개발과 수업ꡕ, 3-6쪽, 교육과학사

(a) 협의의 창의성 : Guilford(1956) Guilford, J. P. (1956). Structure of Intellect, Psychological Bulletin, 53, 267-293쪽.
의 ‘발산적 사고’(확산적 사고)와 같습니다. 이렇게 정의한 창의성 검사는, 예컨대 벽돌과 같은 물건의 용도를 주어진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이 나열해 볼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반응의 수가 많고(fluency), 다양하고(flexibility), 그리고 독특한(originality) 것일수록 창의적이라고 봅니다. Guilford의 발산적 사고의 범주에는 유창성(fluency, 생성해낸 아이디어의 수), 융통성(flexibility, 아이디어들이 속하는 범주의 수 즉 다양성), 독창성(originality, 비범하고 남들이 생성해내지 못한 아이디어), 정교성(elaborativeness, 아이디어를 상세하게 잘 발달시킨 것) 등의 요소가 포함됩니다. Torrance의 창의성은 이 네 요소에다 결점과 문제에 대한 민감성 및 재정의 하기(통상적이고 기존에 사용하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지각하기)와 같은 능력을 추가합니다. 그러나 그는 창의적 사고와 발산적 사고가 같은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립니다. 그것은 창의적 사고에는 문제를 재정의하는 능력과 문제에 대한 민감성도 포함된다고 그는 믿기 때문입니다. 재정의 능력이란 사상의 변형, 재해석 그리고 기능적 고착에서 벗어나 독특한 해결을 생성해 내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문제에 대한 민감성은 괴리나 결손 등을 민감하게 관찰할 줄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의문’과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창의적 사고 과정을 움직여가게 하는데 특히 중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b) 광의의 창의성 : 새롭고 유용한 어떤 것을 생산해 내는 행동 또는 정신과정을 창의성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창의성에는 ‘새로움’과 ‘유용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준거가 적용됩니다.
(c) 과정으로서의 창의성 : 기존의 정보들을 특정한 요구조건에 맞거나 유용하도록 새롭게 변형하거나 조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새로운 변형이나 조합은 유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유추에 의한 사고’를 할 줄 아는 능력이 바로 창의적 사고의 기본적인 요소라 말할 수 있습니다.

  희랍신화의 창의성은 발산적 사고를 의미하는 협의의 창의성 개념을 아주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기억을 토대로 발산하는 힘과 에너지가 바로 창의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플라톤의 예술관은 창의성 개념이 단순히 발산적 사고만을 의미해서는 안되고 거기에 유용성이 덧붙여져야 한다는 광의의 창의성 개념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또한 플라톤이 예술을 모방이라고 본 점에서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창의성을 과정으로서의 창의성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상상력을 통한 기존 정보들의 새로운 변형과 조합을 예술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3종류의 창의성 개념 중에서 예술의 맥락에서는 어떤 창의성 개념이 핵심이 되는 개념일까요? 그리고 과학의 맥락에서도 예술의 맥락에서와 같은 주장이 통용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창의성 개념의 요체는 발산적 사고이고, 발산적 사고 없는 창의성 개념은 생각할 수 없다고 전제할 정도로 창의성에서 발산적 사고 개념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판적․논리적 사고는 수렴적 사고(convergent thinking)인 반면, 창의적 사고는 발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비판적 사고가 수직적 사고(vertical thinking)임에 반해 창의적 사고는 수평적 사고(측면적 사고, lateral thinking)라는 흔히 말하는 2분법적 도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에서 주장하려는 바는 예술의 맥락은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예술의 맥락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유용성 내지 지향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과학의 맥락과 유사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기본적으로 예술의 맥락은 문제 해결 맥락이 아니므로 과학의 맥락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이 논점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열어놓고 있습니다.
적어도 과학의 맥락에서는 창의성의 핵심은 비판적 사고 능력에 있으며, 그것이 창의성 교육과 관련이 될 때는 더더욱 비판적 사고 교육이 그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발산적 사고를 의미하는 협의의 창의성 개념을 제외한 나머지 2가지 창의성 개념, 즉 문제해결과 같은 유용성의 준거를 중시하는 광의의 창의성 개념이나 기존의 정보들의 변형이나 조합을 기반으로한 과정으로서의 창의성 개념은 모두 비판적 사고 개념 속에 포섭되며, 적어도 과학의 맥락에서는 이 비판적 사고 개념에 속하는 두 창의성 개념이 창의성 개념의 요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비록 발산적 사고라는 협의의 창의성 개념은 비판적 사고 개념 속에 포섭되지는 않으나, 창의적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과학의 맥락에서 그 역할은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학의 맥락에서 창의성이 작동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답은 더욱 명료해질 것입니다. 이제 과학 맥락에서의 창의성의 예들을 아인슈타인의 경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행성이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고 그 주위를 도는 이유는 태양이 행성을 끌어당기는 중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니라, 태양의 질량이 비유클리드적 시-공 구조 속에 음의 곡률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휘어진 구조 속에서, 행성에 대한 가장 곧바른 세계-선(World-line)인 측지선(geodesic)은 그 행성의 태양 주위를 도는 실제 운동과 일치하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간략히 말해, 태양의 중력은 공간을 휘게 만들고, 공간의 곡률 때문에 행성은 측지선을 따라 태양 주위를 도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공간은 행성이 공간의 측지선을 따라 움직이게끔 하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행성의 측지성(즉 가장 곧바른 선을 따라 하는 행성의 운동)은 휘어진 공간에 상대적으로 보존됩니다. 라이헨바하는 아인슈타인의 적극적인 공간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력장을 표현한 것이 바로 기하학이다. ---- 우리는 역장(力場)의 물리적인 실재를 중력장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 역장을 기하학 자체의 근거로 간주한다. Hans Reichenbach, The Philosophy of Space and Time, 256쪽.


  필자는 아인슈타인의 공간 개념을 비유를 통해서 다시 한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정사각형 모양의 탄력 있는 고무판을 상상해 봅시다. 그런데 이 고무판의 네 귀퉁이는 움직이지 않게끔 막대기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제 탄력 있는 고무판의 중앙에 무거운 쇠공을 내려놓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러면 평평한 고무판은 공의 무게 때문에 움푹 꺼질 것입니다. 다시금 움푹 꺼진 고무판 위로 매우 작은 쇠공을 똑바로 전방을 향해 굴립니다. 그러면 그 작은 공은 직선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고무판의 함몰 때문에 곡선을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이 비유는 아인슈타인의 공간 개념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움푹 꺼진 고무판은 아인슈타인의 공간에 해당합니다; 무거운 쇠공의 무게는 중력에 해당합니다; 작은 쇠공은 빛에 해당합니다; 작은 공에 의해 그려진 곡선은 움푹 꺼진 고무판의 측지선에 해당합니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작은 공은 곡선(측지선)을 따라 움직이는 데, 그 이유는 무거운 쇠공이 작은 공을 끌어당기는 힘을 미치기 때문이 아니라, 무거운 쇠공의 질량이 고무판 자체의 구조에 함몰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무판과 무거운 쇠공의 무게의 결합인 아인슈타인의 공간은 작은 공을 측지선을 따라 움직이게끔 하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작은 공의 측지성은 휘어진 고무판에 상대적으로 보존되는 것입니다. 김영정, 「물리적 기하학의 규약성」, ꡔ과학과 철학ꡕ, 제1집(1990년), 9-11쪽, 과학사상연구회, 통나무 출판사.


  이와 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한 요점은 중력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별도의 존재자로 보지 않고, 중력 개념을 공간 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독립적인 중력 개념을 해소시켜 버리는 발상 전환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의 그러한 의미있는 역사적인 창의적 발상 전환을 가능케 해준 핵심적 요체는 무엇이었을까요? 필자의 견해로는 창의성 발현의 요체는 이것저것 잡다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뿜어내는 발산적 사고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이 수행한 그러한 종류의 발상전환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형태의 발상 전환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발상전환을 어떤 이론적 정의가 새롭게 재정의될 때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음을 (뇌 기능 정지를 넘어선) 호흡의 중단으로 보다가 죽음을 단순히 뇌 기능 정지로만 보는 것도 이러한 종류의 발상 전환에 속할 것입니다. 더 비근한 예로, 가족 개념에 애완동물을 포함시키지 않다가 새로이 애완동물을 포함시킨다면 이것도 유사한 종류의 발상전환일 것입니다. 라이헨바하는 이러한 발상전환을 ‘죽음’과 ‘가족’ 개념에 대한 좌표적 정의(coordinative definition)의 변화라고 말할 것입니다.
창의적 발상 전환의 핵심 요체는 잡다한 아이디어를 산출해내는 발산적 사고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발상 전환적 아이디어가 주어졌을 때, 그러한 발상 전환적 아이디어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해낼 수 있는 통찰력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어진 문제 영역에 대한 포괄적이고 다각적이고 심도있는 비판적 이해 능력을 토대로한, 특정 아이디어의 문제 해결 유용성에 대한 통찰력과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제집착력인 것입니다. 즉, 문제 영역을 제대로 분석․이해하고, 그 문제 상황이 지니고 있는 함축과 전제들을 파악해 내고, 관련된 여러 요소들을 종합해보고, 어떤 가능한 발상 전환적 해결책이 가장 적절한 것인가를 평가해낼 줄 아는 능력과 아울러 그 문제를 해결해 내려는 집착력인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들이 잘 계발될 때에만 해결해야할 문제 영역에 대한 통찰력과 아울러 어떤 아이디어가 주어진 문제 해결에 유용한지에 대한 통찰력도 얻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 상황을 제대로 분석․이해하고 그 문제 상황의 함축과 전제를 파악해 내고, 관련 요소들을 종합해보고, 가능한 발상 전환적 해결책들을 평가하는 능력이 바로 비판적․논리적 사고 능력의 핵심인 것입니다. 독일의 화학자 Kekule의 벤젠링 발견의 사례는 필자의 이러한 주장을 더욱 단적으로 지지해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Kekule가 벤젠링을 발견한 것은 ‘역사적인 창의적 행위’(historical creative act)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역사상 다른 어느 누구도 그러한 창의적인 사고나 지식을 가진 적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Kekule는 처음에는 모든 유기체 분자는 탄소 원자의 스트링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은 직선적인 시퀀스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벤젠의 성질은 이러한 표상공간에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벤젠의 분자 구조를 밝히기 위해 며칠 밤을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꿈에서 우연히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을 보았지요. 그는 잠에서 깨어나 옳거니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는 꿈에 나타난 그 뱀의 형상에서 힌트를 얻어 벤젠 분자의 탄소 6원자의 고리 결합 모델을 밝혀내고,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방향족 화합물의 구조를 설명해 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꿈의 도움을 얻어 이러한 직선적인 시퀀스를 몸을 꿈틀거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과 같은 것으로 상상해 봄으로써 표상공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른 개념적 공간이 자신의 표상공간(즉 유기체 분자)에 그려짐에 따라 표상공간이 창의적으로 재정의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벤젠분자구조가 고리결합으로 되어 있다는 케큘레의 믿음이 정당한 것인지, 또 그 믿음에 대한 증거가 있는지의 문제는 그가 꿈을 힌트로 해서 벤젠 분자구조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가 꿈을 통해 벤젠 구조를 밝혀냈다는 데 대한 인과적 설명은 그 믿음에 대한 이유나 증거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만약 이를 같은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바로 발생적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Kekule의 벤젠링 발견이라는 역사적인 창의적 행위를 가능케 해주었던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꿀 수 있는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꿈의 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꿈의 내용을 자신의 문제 해결에 적용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해 낼 수 있는 통찰력인 것입니다. 이러한 통찰력은 이것저것 잡다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마구 뿜어내는 발산적 사고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 영역에 대한 포괄적이고 다각적이고 심도있는 비판적 이해 능력과 몰두 능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문제 영역을 제대로 분석․이해하고, 그 문제 상황이 지니고 있는 함축과 전제들을 파악해 내고, 관련된 여러 요소들을 종합해보고, 가능한 발상 전환적 해결책 중에서 어느 발상 전환이 가장 적절한 것인가를 평가해낼 줄 아는 비판적․논리적 사고 능력과 아울러 그 문제를 해결해 내려는 집착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예술관과 관련된 표현들을 빌자면, 의미있는 역사적인 창의적 행위는 무절제한 상상력(발산적 사고력)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상상력(통찰력)에서 발현되는 것입니다. Kekule의 예에서는 발산적 사고 능력이 하여야 할 역할을 꿈이 대신하고 있어 케큘레의 벤젠분자구조 발견 예는 발산적 사고 능력의 도움 없이도 역사적인 창의적 행위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인 창의적 행위를 가능케 해주었던 핵심 요소가 이것저것 잡다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뿜어내는 발산적 사고 능력이 아니라 어떤 아이디어가 주어졌을 때 그 아이디어를 자신의 문제 해결에 적용시키면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해 낼 수 있는 통찰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들은 역사상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Archimedes가 목욕탕 물이 넘치는 것을 처음으로 본 사람이 아니며, Newton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처음으로 본 사람이 아닙니다. 또 주전자에서 증기가 소리쳐 나오는 것을 Watt가 처음 본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태들의 의미나 함축들을 얼마나 정확하고, 깊고, 다각적으로 파악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러한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능력은 높은 비판적․논리적 사고 능력이며, 이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했던 창의적 통찰을 가능케 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남들과는 다른 강력한 동기와 과제에 대한 집착력도 작용하고 있었겠지요.

  지금까지 필자는 과학적 창의성의 핵심은 비판적․논리적 사고 능력에 있으며, 그것이 창의성 교육과 관련이 될 때는 더더욱 비판적․논리적 사고 교육이 그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비판적․논리적 사고란 무엇이며, 과연 필자의 이런 주장이 어떤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창의성 연구에 관심을 갖는 많은 학자들은 창의적 문제 해결에는 아이디어들을 생성해 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생성해낸 아이디어들을 다듬고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전자를 협의의 창의적 사고, 생산적 사고 또는 발산적(확산적) 사고라 부르고 후자를 비판적․논리적 사고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창의적 사고에 기초하여 논리적 사고가 그리고 논리적 사고에서 다시 창의적 사고가 계속 되는 식으로 이들은 두 축으로 같이 작용한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뇌반구의 작용과 연결시켜 설명하면 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Roger Sperry 등의 연구에 힘입어, 좌뇌와 우뇌의 기능이 전문화되어 있으며, 대뇌 반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좌반구는 언어와 수를 담당하며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기능을 주로 수행합니다. 시퀀스적 처리를 하며,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며, 직선적이고, 상징적인 표상을 하며 판단적입니다. 반면에 우반구는 형태를 인식하며, 음악, 리듬, 그리고 정서에 반응하며, 그리고 주로 시각적이고 상상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게스탈트적(전체적)으로 들여다보며 비판단적입니다. 요약하면, 좌반구는 ‘비판적 사고’ 기능을 그리고 우반구는 ‘아이디어 생산적 사고’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창의력이란 우반구의 산물이기보다는 좌우 두 반구가 특별하게 상호작용하는 데서 생깁니다. 창의적 문제해결에는 아이디어 생산적인 우반구의 기능과 이들을 다듬고 평가하는 비판적 사고의 좌반구 기능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이 하나로 작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제 해결에는 여러 과정들이 있으며 이들 각 과정(단계)에서 어떠한 반구(기능)가 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아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좌반구: 문제를 논리적으로 정의합니다.
        우반구: 가능한 창의적인 방법이나 대안적인 해결책을 생성합니다.
        좌반구: 어떤 대안이 적용가능한 것인지를 실용적으로 평가합니다.
        좌반구: 전략적인 실행계획을 세웁니다.
        우반구: 당신이 가지고 있는 비전과 열정에 공감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단계에서는 우반구가 주로 작용하나, 창의성은 좌우 두 반구의 상호작용의 결과인 것입니다.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의 밀접한 연관성을Nickerson(1987)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는 완전한 별개의 것이 아니다. 훌륭한 비판적 사고는 그 성질상 창의적이며, 훌륭한 창의적 사고에는 항시 진행중인 산출(product, 지식)을 비판적으로 평정하고 향상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Nickerson, D. N. (1987). Knowledge as design: Teaching thinking through content. In J. B. Baron & R. J. Sternberg (Eds.), Teaching thinking skills: Theory and practice. 66쪽, New York: W.H. Freemen and Co. (김영채, ꡔ창의적 문제 해결 : 창의력의 이론, 개발과 수업ꡕ에서 재인용)


  김영채 교수는 창의력과 논리적 사고력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창의적 사고에는 분석력, 종합력, 평가력이 모두 필요하다. Bloom 등의 교육목표 분류학에서 보면 이들은 모두 고차적 수준의 사고력이다. 그러나 ‘분석력’과 ‘평가력’은 논리적 사고력이고 ‘종합력’은 협의의 창의력이다. 논리력을 개발하기 위한 교과 학습에서는 내용을 요소나 부분들로 분석해보고, 특징들을 찾아보고, 몇 가지 행동이나 현상에서 어떤 재미있는 일반적인 형태(패턴)가 있는지를 찾아보거나 또는 인과관계를 찾아보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종합력을 기르기 위하여서는 부분들을 종합하여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보고, 가설이나 이론을 만들고, 일반화해 보고, 디지인을 설계해 보도록 할 수가 있다. 평가력을 개발하기 위하여 아이디어나 작품을 정확성, 가치, 또는 유용성 등에 따라 평가해 볼 수도 있다. 창의적 문제 해결에는 이들 능력이 균형있게 그리고 종합적으로 개발되어야 함을 다시금 확인해 보는 셈이다.” 김영채, ꡔ창의적 문제 해결 : 창의력의 이론, 개발과 수업ꡕ, 147쪽.


  필자는 김교수를 비롯한 창의성 연구자들이 종합력이라고 분류하고 있는 지적 작업들이 실제로는 논리적․비판적 작업이라는 것을 우선 지적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가설이나 이론을 만드는 작업은 가설연역추리,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귀추법(abduction) 또는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이라고 불리는 고차적인 논리적 작업에 속하며, 일반화 작업 역시 귀납적 일반화, 또는 통계적 일반화와 같은 기본적인 귀납 추리 작업에 속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실제적인 문제 해결의 맥락에서는 발산적 사고가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그런 다음 논리적 사고가 선택하고 다듬는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에 적절한 아이디어가 어떤 것일지에 대한 선이해 내지 통찰력의 인도 하에서 우리는 아이디어를 찾아나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문제해결에 필요한 ‘아이디어 생산적 사고’ 자체가, 만일 그것이 단순한 발산적 사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반구가 주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좌우 두 반구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 만일 ‘아이디어 생산적 사고’가 발산적 사고만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우반구가 주기능을 담당할 수 있으나, 그러한 발산적 사고는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창의적 문제 해결의 맥락에서는 예컨대 벽돌과 같은 물건의 용도를 주어진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이(fluency), 다양하게(flexibility), 그리고 독특하게(originality)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벽돌에 관한 주어진 문제 상황과 관련하여 해결 개연성이 높은 적절한 아이디어를 찾아나갈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발산적 사고가 작동을 하지 않고서도 어떻게 역사적인 창의적 행위가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를 Kekule의 경우에서 보았습니다. 창의적 문제 해결에서는 발산적 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할 문제 영역에 대한 통찰력과 아울러 어떤 아이디어가 주어진 문제 해결에 유용한지에 대한 통찰력이 핵심 요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력은 바로 논리적․비판적 사고 훈련을 통해서 길러질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II. 비판적․논리적 사고란 무엇인가?

  그러면 비판적․논리적 사고란 무엇일까요? 우선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는 같은 개념인가요? 창의성과 관련된 책들에서는 상호 대치 가능한 개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필자도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가 같은 외연을 지닌 개념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논리학하면 우리는 보통 형식논리학을 머리에 떠올리므로 논리적 사고는 주로 형식논리/수리논리적인 뉘앙스가 강한 용어인 반면, 비판적 사고는 비형식논리학을 기반으로한 일상언어/비형식논리적인 뉘앙스가 강한 용어입니다. 보다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말하자면, 논리적 사고는 타당성(validity)을 그 준거로 가지는 사고인 반면, 비판적 사고는 건전성(soundness)을 그 준거로 가지는 사고라고 구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논리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 모두 수리논리적 측면이나 언어논리적 측면 어느 한 측면에 대한 강조를 넘어서서 양자 모두에 통합된 적용력을 가진 사고 유형에 대한 연구와 훈련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지향점이 같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를 혼용해서 쓸 것입니다.

  비판적 사고 영역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들이 포함될까요? 필자는 비판적 사고를 크게 3범주로 나누고 있습니다 : 분석(이해․분석력), 논증(추론력), 변증(종합․창의력) 여기서의 창의력은 발산적 사고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각 범주는 다음과 같은 영역으로 각기 나뉘고 각 영역에 해당하는 대표적 사고 작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표에는 일부만 열거되어 있습니다.)

(1) 분석(이해․분석력)
① 영역 1 : 개념/명제 이해 영역
        - 애매모호성, 필요충분조건, 반대모순관계, 정의 등
② 영역 2 : 텍스트 분석 영역
        - 주제파악, 구조분석, 내용요약, 제목 붙이기 등
③ 영역 3 : 통계자료 해석 영역
        - 통계자료/도표 이해, 통계자료/도표 분석, 통계자료/도표 추리 등
(2) 논증(추론력)
④ 영역 4 : 연역 논증 영역
        - 생략된 전제 찾기, 생략된 결론 찾기, 논거 구성, 논리적 함축, 연역증명 등
⑤ 영역 5 : 귀납 논증 영역
        - 귀납적(통계적) 일반화, 통계적 삼단논법, 인과추리, 밀의 방법, 유비추리 등
(3) 변증(종합․창의력) ‘영역 6 : 상황추리 영역’은 보다 고차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요한다는 점에서 변증 범주에 포함시켰으나, 그 성격상 논증 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⑥ 영역 6 : 상황 추리 영역
        - 행렬논리, 자리배치 논리, 상황판단, 의사결정이론, 이질적 추리 등
⑦ 영역 7 : 종합 평가 영역
        - 귀추법, 귀류법, 발상전환을 통한 논증강화/약화, 대안가설제시, 가치평가 등

  이제 비판적 사고의 연구 및 교육과 관련된 국내외 현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국외 현황에 대해서는 김광수교수의 철학연구회 발표논문 「비판적 사고론」을 참조하였음.
미국의 공교육에 비판적 사고가 본격적으로 접목되기 시작한 것은 1983년에 ꡔ위기에 처한 국가ꡕ 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 Progress, A Nation at Risk: The Imperative for Educational Reforms(Washington D. C.: U. 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83).
라는 연구 보고서가 발간되면서였습니다. 교육자들과 뜻 있는 사람들은, 이 보고서가 발간되기 적어도 10년 전부터, 학생들의 SAT 성적 저하, 문제 해결력 부족, 단순한 논증에 대한 몰이해,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부족 등에 모두 ‘생각하는 능력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ꡔ위기에 처한 국가ꡕ는 3R에 집중된 커리큘럼을 4R로 보완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즉, 읽기(reading), 쓰기('riting), 산수('rithmetic)에 추리(reasoning) 교육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Kerry S. Walters, Introduction: Beyond Logicism in Critical Thinking, in Kerry S. Walters(ed.), Re-Thinking Reason: New Perspectives in Critical Thinking(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4), 3쪽 참조.
그로부터 2년 후 실시된 갤럽 조사는 미국 교육자들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A. Gallup, "The Gallup Poll of Teachers' Attitudes Toward the Public Schools," Phi Delta Kappan 66 (1985): 327.
학생들에게 사고력 증진 교육은 교육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은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교육받을 도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Stephen P. Norris. "Synthesis of Research on Critical Thinking," Educational Leadership 42 (1985): 40-45.

  비판적 사고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철학함의 방법과 정신, 그리고 철학 이론은, 비판적 사고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1910년부터 1939년에 이르는 듀이의 저작들이 비판적 사고 교육을 선도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비판적 사고는 글레이저, 러셀, 스미스, 에니스, 버드멘, 알렌, 롯, 덴젤로, 멕펙, 시겔, 폴, 그리고 다우어 등에 의해 핵심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듀이(John Dewey)는 과학적 방법에 ‘반성적 사고’라든가 ‘반성적 탐구’라는 용어를 적용하였습니다. 1940년부터 1961년 사이에 글레이저(Edward M. Glaser), 러셀(David H. Russell), 그리고 스미스(B. Othanel Smith) 등은 진술의 검토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비판적 사고’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하였습니다. 1962년부터 1979년 사이에, 에니스(Robert H. Ennis), 버드멘(Karl O. Budmen), 알렌(R.R. Allen), 롯(Robert K. Rott) 및 덴젤로(Edward D'Angelo) 등은 문제 해결과 과학적 방법을 제외하고 오직 진술의 평가만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비판적 사고’의 의미를 축소시켰습니다. ‘비판적 사고’라는 말이 문제 해결의 측면까지 포함하게 된 것은 1980년 이후 에니스, 멕펙(John E. McPeck), 시겔(Harvey Siegel), 그리고 폴(Richard W. Paul) 등의 저작을 통해서였습니다. James T. Streib, History and Analysis of Critical Thinking (Dissertation, The University of Memphis, University Microfilms International, 1992) 참조. 다우어(Francis Dauer)는 비판적 사고를 학문의 방법론으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 대학 시스템은 학부 학생들로 하여금 9학점 이상의 비판적 사고 강좌를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교과과정은 월터가 ‘비판적 사고 폭발’이라고 명명할 정도의 급격하고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Walters(1994), 4쪽.

  현재 미국에는 수많은 비판적 사고 연구 기관들이 있고, Center for Critical Thinking, at Baker University
    Center for Critical Thinking at Sonoma State University
    Center for Critical Thinking (Richard Paul)
    Center for Research in Critical Thinking at the University of East Anglia
    Institute for Critical Thinking, Montclair State University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Philosophy for Children, Montclair State University
    The Branco Weiss Institute for the Development of Thinking
    Maryland Community College Consortium for Teaching Reasoning
    The Reasoning Center at Virginia Commonwealth University
    Critical and Creative Thinking Graduate Program,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t Boston
    National Council for Excellence in Critical Thinking (Richard Paul)
학회들이 있으며, Association for Informal Logic and Critical Thinking
    Tregoe Education Forum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Controversies
    American Forensic Association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ritical Thinking at Sonoma State University
정기 간행물들도 있고, Informal Logic
    Inquiry: Critical Thinking Across the Disciplines
    Argumentation
    Argumentation, Interpretation, Rhetoric
    Argumentation & Advocacy The Journal of the American Forensics Association
여러 종류의 비판적 사고력 검사가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습니다. Ennis-Weir Critical Thinking Essay Test
    Tasks in Critical Thinking
    The Ross Test of Higher Cognitive Processes
    Watson-Glaser Critical Thinking Test
    Cornell Critical Thinking Test
    New-Jersey Test of Reasoning Skills
    California Critical Thinking Skills Test
심지어는 ‘비판적 사고’ 간판을 내건 대학원 프로그램까지 있습니다.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t Boston에 Critical and Creative Thinking Graduate Program이 생긴 것은 1976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대부분의 주요 시험에 비판적 사고 검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MBA 과정에 입학하기 위한 GMAT나 Law School에 입학하기 위한 LSAT에서뿐만 아니라 간호사 시험에서까지도 논리적․비판적 사고력에 대한 평가가 체계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의 비판적․논리적 사고의 연구와 교육은 아직 활성화 초기단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1990년경부터 서울대학교에서 “논리와 비판적 사고” 과목이 개설된 이래 국내에서는 꾸준히 그러나 조용히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움직임은 비판적 사고의 빅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04년부터 외무고시를 필두로 모든 고등고시의 1차시험을 공직적격성시험(PSAT)으로 바꾸기로 입법 예고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공직적격성 시험의 내용은 비판적 사고 능력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2001년  11월  13일자 행정자치부공고 제2001 - 156호 참조.


・ 언어논리영역 : 문장구성 및 이해능력, 표현력, 논리적 사고력, 추론능력 등을 검정
・ 자료해석영역 : 수치자료의 처리 및 분석능력, 기초 통계처리・해석능력, 정보화 능력 등을 검정
・ 상황판단영역 : 기획・분석능력, 연역추리능력, 판단 및 의사결정능력, 문제해결능력 등을 검정

  대학 입시를 위한 수학능력시험을 관장하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초중학생용과 고등․성인용 2종의 비판적 사고력 검사문항을 개발하여 금년부터 활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국내에서 개발된 최초의 공식적인 비판적 사고력 검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습니다. 김명숙, 박정, 김광수, ꡔ사고력 검사 개발 연구(1): 비판적 사고력 검사 예비 문항 개발편ꡕ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02) 참조.
또 국내 공학계는 공학교육인증제를 실시하면서 공학교육인증의 한 필수요건으로 ‘공대생을 위한 비판적 사고’ 과목 이수를 지정할 예정인데, 이는 공학교육의 내실화를 기하고 외국과 호환성 있는 공학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외 공학교육인증제도에 대한 내용은 조벽 교수의 저서 ꡔ조벽교수의 명강의 노하우 & 노와이ꡕ 참조.

  그리고 특히 주목할 만한 일은 서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의 논리․논술 경시대회에 ‘논리와 비판적 사고력’ 선다형 시험이 금년부터 추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ꡔ제3회 전국 고교생 논리․논술 경시대회 시행보고서ꡕ 참조.
그것은 논리적․비판적 사고력이 과학적 문제 해결의 맥락뿐만 아니라 좋은 논설문 쓰기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행보고서에 따르면,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논리․논술 경시대회의 기본 취지이며, 논술 쓰기시험의 평가 범주와 비판적 사고력 선다형시험의 평가 범주가 표현력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논술 시험이 평가하는 내용은 네 범주로 나뉘며 각 범주에서 평가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항목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분석․이해력
    - 제시문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가?
    -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했는가?
    - 문제가 다루는 현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2) 논증력
    - 글 전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구성했는가?
    - 각 단락의 내용이 논리적으로 구성되었는가?
    - 결론이 명확한가 그리고 타당한 논거들이 제시되었는가?
(3) 다각적 사고력
    - 주어진 문제에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가?
    - 자신의 입장을 창의적으로 설정하였는가?
(4) 표현력
    -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였는가?

위 내용을 살펴보면, 표현력을 제외한 나머지 3범주는 앞서 필자가 제시한 분석(이해․분석력), 논증(추론력), 변증(종합․창의력)이라는 비판적 사고의 3범주와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판적 사고 교육의 강조는 정보화 사회 혹은 지식기반 사회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현대사회의 특성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정치․사회․문화의 패러다임의 급속한 변화는 요구되는 지식기반의 내용과 중요성을 유동적으로 변화시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고 새로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적응적인 인지적 능력의 배양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누구나 인터넷 서핑을 통해 방대한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암기 등을 통한 정보와 지식의 습득과 축적의 그 본래적 가치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가치를 만들어 내는 중심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있지 않고, 습득한 정보와 지식들을 조합하고 재구성하여 합리적인 문제 해결안을 마련할 줄 아는 능력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정보와 지식을 논리적․비판적으로 구성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제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적응적인 인지적 능력의 핵심이 바로 비판적 사고인 것입니다. 그리고 비판적․논리적 사고를 통한 합리적 문제해결이 결과적으로 새로움의 성격을 띨 때 우리는 그것을 ‘창의적 사고’라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 교육은 명제적 지식(knowing that)이나 서술적 지식(declarative knowledge)에 대한 학습이 아닌 문제해결 방식(knowing how)이나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에 대한 학습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성취(performance)보다는 능력(competence)을 배양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Torrance의 창의성에 관한 생존적 정의를 제 주장과 연결시켜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Torrance, E. P. (1995) Why fly? Norwood, NJ: Alex Publishing Corporation.
Torrance에 따르면, 진정으로 창의적인 것은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창의성은 가르치지 않고 저절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항공기 승무원이 직면할 생존장면에서 창의적인 해결을 할 수 있으려면 이전의 요소들을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어떻게 물에서 살았으며, 북극 탐험가들이 어떻게 생존했으며, 배가 조난 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났으며, 다른 비행사들이 어떻게 탈출했는지 등등을) 지금 장면에서 요구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것으로 상상하여 재조합해야 합니다. 창의적 해결의 요소들은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창의적 해결의 요소들에 대한 교육은 창의성 자체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바로 비판적․논리적 사고 능력에 대한 교육인 것입니다. 창의성 자체는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훈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창발적인 결과물(emergent product)인 것입니다.





아테네학당 (School of Athens)
[철학고전읽기2] E.프롬, "소유냐 존재냐"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