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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지매(2003-06-20 12:57:26, Hit : 1643, Vote : 177
 ◀ 非說所說分 第二十一 ▶

◀   非說所說分   第二十一   ▶  


須菩提 汝勿謂如來作是念 我當有所說法 莫作是念 何以故 若人 言 如來 有所說法

卽爲謗佛 不能解我所說故 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 爾時 慧命須菩提 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於未來世 聞說是法 生信心不 佛言 須菩提 彼非衆生 非不衆生

何以故 須菩提 衆生衆生者 如來說非衆生 是名衆生



수보리 여물위여래작시념 아당유소설법 막작시념 하이고 약인 언 여래 유소설법
즉위방불 불능해아소설고 수보리 설법자 무법가설 시명설법 이시 혜명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어미래세 문설시법 생신심부 불언 수보리 피비중생 비불중생
하이고 수보리 중생중생자 여래설비중생 시명중생



금강반야바라밀경강화(金剛般若波羅蜜經講話)



非說所說分   第二十一



『수보리야, 여래가 생각하기를 「내가 말한 바 법이 있다.」한다고 하지마라. 너는 이런 생각을

하지 말지니 무슨 까닭 이겠는가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 법을 가지고 있다.」한다면, 이는 곧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

내가 설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법을 말 한다는 것은

실로 말 할 만한 법이 없으므로 이를 이름하여 '법을 말한다(說法)' 하느니라.』

그때에 혜명(慧命)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 ☜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앞으로 오는세상(來世)에 이 법문을 듣고서 믿음을 일으킬 이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그들은 중생도 아니오 중생 아님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하면, 수보리야,

중생 중생이라 한 것은 여래가 말씀하시기를 이는 중생이 아니요 다만 중생이라 이름 한 것이니라.』



DIAMOND SUTRA



Section XXI.   Words cannot express Truth.



            That which Words Express is not Truth    

           Subhuti,do not say that the Tathagata conceives the idea: I must set forth a Teaching.

    For if anyone says that the Tathagata sets forth a Teaching he really slanders Buddha

    and is unable to explain what I teach. As to any Truth-declaring system,Truth is undeclarable;

    so "an enunciation of Truth" is just the name given to it.

          Thereupon,Subhuti spoke these words to Buddha:

          World-honoured One,in the ages of the future will there be men coming to hear a declaration

     of this Teaching who will be inspired with belief?

          And Buddha answered: Subhuti,those to whom you refer are neither living beings

    nor not-living beings. Wherefore? Because "living beings", Subhuti,these "living beings"

    are not really such; they are just called by that name.



① 내가 말하는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不能解我所說故) : 이것은 마치 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의 "진실한 믿음의 마음을 낼 수 있겠읍니까(生實信不)"라는 말씀과도 비슷한데, 전자의 것은 相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를 믿을이가 없겠다는 의미이고 여기서의 것은 부처님의 본질과 설법의 정의에 대한 풀이를 믿기 어렵겠다는 뜻이다.



② 법을 설한다고는 하나(說法者) : 나집본 이외의 유지본, 진제본, 현장본, 의정본 그리고 범본은 모두 "법을 설한다는 것은, 법을 설한다는 것은"라고 반복해서 설명하여 그 의미로서 해석하고 있다.



③ 혜명(慧命) : 원어는 아위스마트( ayusmat). 원래 '장수(長壽)의'라는 형용사이지만, 부를 때 이름 앞에 붙여서 경어로 쓰기도 하여 장로(長老), 대덕(大德), 존자(尊者), 구수(具壽), 정명(淨命)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혜명에 관해서 장수(長水)의 {금강경소기료회}(金剛經疏記料會) 제2권에서는, "색신은 食으로써 명(命)으로 삼고, 법신은 혜(慧)로써 명으로 삼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법신의 지혜를 수명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오십삼가주}(金剛經五十三家註) 제4권에서는, "진웅(陳雄)이 말하기를, <혜명 수보리를 법화경 신해품에서 살펴보면, 혜란 것은 德을 말하고 명이란 것은 수(壽)를 말한다. 즉 장로의 이명(異名)이다>"라고 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18권({대정신수대장경} 27, P.91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존이 바라니사(婆羅泥斯; 鹿苑)에 도달했을 때 오인(五人)이 문득 부처님을 보고, 드디어 제(制)를 세워 말하기를 <고타마는 해만다구(懈慢多求)로서, 광란하고 실지하고 헛되어서 얻을 바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 또 우리에게 다가와서 유혹하려고 한다. 우리들은 능히 모두가 담론하거나 공경하거나 질문하거나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단지 평상시대로 그가 자리를 깔고 앉든지 말든지 그에게 맡겨 버리자>라고.
그 때 세존이 가까 다가온 즉, 그에게 위덕이 갖추어져 있음을 보고, 그들은 본래의 생각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을 맞이하러 나가 드디어 합장공경하여 귀명하였다.···그 때에 부처님은 자리로 나아가 편안히 앉았는데, 그 위광기특(威光奇特)한 모습이 묘고산(妙高山)과 같았다. 그리하여 다섯 사람은 부처님을 공경하여 부르기를 구수(具壽;ayusmat) 또는 고타마라고 하였는데, 부처님은 이에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여래를 호칭함에 있어서 구수라고 하거나 족성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라고. 이에 따르면 아위스마트(ayusmat)라는 호칭은 동년배나 그 이하의 사람에게 사용되었던 것 같다.



④ 이 때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하기를(爾時 慧命須菩提 白佛言) : 이하의 62자는 본래 나집역본에는 없었고 뒤에 보충 삽입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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